야구 관람 혹은 응원

by 한량

취미 이야기를 하나씩 써 나가다 보니 새삼 내가 작년에 이것저것 시도한 게 많구나 싶다. 원래도 시작하자마자 때려치운 것부터 한 달 이내로 그만둔 것, 3개월쯤 버텨본 것 등등 나의 초단기 취미 생활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몇 년씩 계속한 건 손가락에 꼽을 만큼이다. 그런데 작년에 시작해서 아직껏 지속하고 있는 게 많으니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야구는 사실 취미 생활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좀 헷갈렸다. 야구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야구장에 응원을 하러 간다는 게 정확한 얘기인데, 그렇다면 응원이 취미인 건가?

2025년, 3월부터 가을에 끝난 한국시리즈까지 나는 아들과 함께 줄기차게 야구장에 갔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원래 야구를 좋아했냐고 사람들이 묻곤 하는데, 나는 사실 작년 3월 직전까지만 해도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훨씬 속도감 있고, 경기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은 농구가 내 취향에는 더 맞다. 중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 농구대잔치를 보러 꽤 자주 다닌 전력(?)도 있다. 그렇지만 야구는 집에서 남편과 아들이 중계를 볼 때도 제대로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야구장에 처음 간 건 아들 친구 엄마가 표가 남으니 같이 가자고 해서 간 LG 트윈스 경기였다. 물론 그때도 야구라면 홈런, 안타 정도만 아는 문외한이었지만, 선수들마다 다른 등장곡, 다른 응원가, 다채로운 응원 동작은 딱 내 취향이었다.

모든 관중이 한마음 한뜻으로 팀을 응원하는 그 순간의 가슴 벅찬 느낌은 아직도 생각하면 심장박동이 마구마구 빨라지는 것 같다.


사실 원래도 나는 응원 마니아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농구대잔치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응원이 다였지만, 대학교에 가서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으로 응원의 세계를 접한 순간 바로 깨달았다. 이게 너무너무 내 스타일이라는 걸.


평소에는 비교적 얌전한 이미지이지만, 응원할 때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광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경기장에 같이 간 일행들이 나를 창피해할 때도 있다. 아무튼 대학교 4년 내내 공부는 게을리했어도 응원만큼은 학교 응원전, 정기전, 그리고 농구대잔치를 다니며 꽤나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야구장에서 정말 오랜만에 예전의 그 열정과 흥분의 도가니를 다시 경험한 나는 바로 야구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아들이 읽던 ‘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야구 상식’을 읽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LG 트윈스 응원가를 비롯해서 개별 선수들의 응원가와 응원 동작도 부지런히 익혔다. 야구 응원가는 대학교 때 부르던 응원가와 같은 것도 많아서 응원가를 부르다 보면 정말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도 살짝 든다.

6, 7월에는 병원에 다니고 수술을 받느라 야구장에 갈 수 없었지만, 8월부터 10월 말까지는 아들이랑 거의 매주 경기장에 간 것 같다.

떼창으로 같이 부르는 응원도 재미있었고, 보다 보니 9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야구만의 매력도 서서히 알아갔다. 야구장의 맛집도 내가 자주 야구장을 찾은 이유 중 하나였다.

같은 잠실 경기장이지만 농구장보다 야구장은 훨씬 더 메뉴가 다채롭다. 치킨, 피자, 햄버거, 만두, 떡볶이는 물론이고 삼겹살과 막창에 김치말이 국수를 먹으면서 야구를 볼 수 있다니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맥주통을 등에 메고 경기장을 누비는 아저씨 덕분에 맥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나랑 우리 아들의 최애 메뉴는 삼겹살인데, 갈 때마다 줄이 어찌나 긴지 줄 서느라 힘들어 죽겠다. 갈 때마다 삼겹살에 치킨에, 게다가 홈런볼도 꼭 먹어 줘야지 올여름에 다이어트는커녕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건 분명 야구장 때문이다.


야구장을 자주 가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무래도 아들과의 공통 관심사가 하나 늘었다는 거다. 그전에는 아들이 아무리 야구를 좋아해도 나는 재미가 없으니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제 같이 경기를 보다 보면 내가 야구 규칙을 물어보기도 하고, 아들도 신이 나서 LG 감독이 어쩌고, 지금 해설하는 사람은 왕년에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론 나는 들어도 빛의 속도로 잊어버리고 다시 물어보기를 반복하지만, 이제는 대략적인 규칙과 LG 트윈스 선수들, 타 팀 선수들 몇몇 정도는 안다(솔직히 아직도 세세한 규칙은 잘 모르겠다. 야구 용어랑 세부 규정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다들 다 알고 경기를 보는 걸까?)


올해 초 몇 달간 아들이 때 이른 사춘기가 아닌가 싶었던 터라, 나는 같이 야구장에 다닌 덕분에 그 시기를 비교적 잘 넘기지 않았나 KBO 관계자들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지금은 거짓말처럼 다시 돌아왔지만, 3개월 정도는 다니던 학원도 다 그만두고 내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생난리였으니 말이다. 애가 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가서 내가 그 문을 열려다 문을 부순 일도 있었다(일부러 부순 건 아니고, 문을 확 밀었는데 걸쇠 부분이 망가졌다).

물론 아들의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다시 올 수도 있고, 당장 올해부터는 야구장에 같이 안 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작년 한 해는 아이도 나도 야구 덕분에 즐거웠고 매일매일이 짜릿했다.


야구를 취미로 넣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내년에 아들이 안 가도 나는 야구장에 갈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갈 것 같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응원가를 부르는 순간 도파민 분비가 활성화되는 그 느낌을 오랜만에 다시 느껴 버렸으니……. 대학 시절에 응원가만 들어도 피가 끓던 때가 있었는데, 야구장에 가면 예전 그 느낌이 다시 팍팍 살아난다.

게다가 내가 KBO에 입문하자마자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나의 소속감은 이미 해병대 수준이다. 내년에는 더 미친 듯이 응원해야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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