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내가 환자를 다시 만난 것은 1주가 지난 화요일이었다.
좌측 옆구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한 다른 환자를 검진하는 도중, 낯익은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반쯤 벗어진 머리숱, 낯익은 얼굴의 할아버지가 점잖게 갈색 양복을 입고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비뇨기과 선생님한테 전화 좀 해줘. 아파서 죽겄어. 전에도 그 선생님이 봤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선생님한테 전화해줘."
"그 선생님 누구요? 연락하고 오신 거예요?"
간호사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와. 그냥 그 선생님이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전화하면 와서 봐줄 거야"
"환자분 저희가 오신 순서 하고, 응급한 정도에 따라서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거예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전화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오신 선생님이 또 온다는 보장도 없어요. 앉아서 기다리세요"
응급실 간호사는 지친 표정으로 환자에게 절차에 따라 진행됨을 설명했다.
'어라? 할아버지 또 오셨네? 이번에도 피가 나서 오셨나?'
"저 여기 있어요. 또 오셨네요?"
"아고 여기 선생님 있었구먼. 나 죽겄어. 또 막혔어. 배도 아프고, 환장하겠다니까. 동네병원 갔는데 이리로 가라고 해서 오줌줄만 넣고 여주에서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어. 나 좀 살려줘"
"언제부터 또 피가 나기 시작했어요?"
"어제저녁부터 났는데, 이번에는 토마토 주스마냥 시뻘건 게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니까. 동네병원에서 소변줄 넣고 세척하고 별 짓 다했는데. 안 멈춰."
"이리 오셔서 누워보세요. 간호사 선생님, lab은 시행했나요?"
"아직이요. 지금 방금 접수된 분이세요."
"그럼 제가 먼저 Physical(Physical examination, 신체진찰) 하고 lab 할게요."
환자를 검진용 침대에 눕히고 신체 진찰을 시작했다. 갈색 양복바지 지퍼 사이로 소변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선홍색의 혈뇨가 배액 되고 있었다. 환자의 복부는 distension(팽만)은 없어 보이는 상태였고, Direct tenderness(압통), Rebound tenderness(반발통) 등은 관찰되지 않았다. 양측 옆구리 통증은 없었고, 요도구 주변으로 혈전이 보였다. 필시 방광에서 생긴 혈액 덩어리가 방광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요도구 주변으로 빠져나왔을 것이다. 환자의 상태는 방광 내부에서 발생한 혈관 파열에 의한 출혈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거 irrigation(세척)으로는 어림도 없겠는데. 일단 먼저 irrigation 해보고 안되면 Cystoscopy(방광내시경)을 하자'
"선생님 여기 irrigation(세척) 할 것 좀 주세요"
타원에서 삽입한 소변줄을 세척액이 지속 투여 가능한 소변줄로 바꾸고, 방광 세척을 시행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환자의 혈뇨는 조금은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활동성 출혈(active bleeding)을 의심할 정도의 색으로 배액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 여기 cold saline(차가운 생리식염수) 3L 연결해주시고, Esbix(지혈제) 3amp(약물 포장 단위) 섞어서 200cc/hr 로 주입해 주세요. 환자분 치료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bed 배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환자분 지금은 지난번이랑은 상황이 조금 달라요. 아마도 방광 점막에 노출되어있던 혈관이 파열되면서 활동성 출혈이 있는 것 같구요. 세척액으로 지난번 같이 치료를 시작하겠지만, 호전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럴 경우에는 수술실에서 방광내시경으로 출혈 부위를 지혈해야 하거든요? 지금보다 혈뇨가 호전되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고 알고 계셔요. 항생제 하고 진통제도 좀 맞으시고, 혈액검사도 하셔야겠어요."
"나 죽어? 죽는겨?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겄어."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렇진 않을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우선 여기 누워서 배에 힘주지 마시고 계세요. 식사 마지막에 언제 하셨어요?"
"어제저녁부터 물 한 모금 안 마셨어."
"그럼 CT도 같이 찍어볼게요. 활동성 출혈이 있는지도 봐야 하고, 다른 장기는 괜찮은 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려. 살려줘."
"CT도 찍으시고, 혈액검사도 하시고 결과 나오면 제가 와서 다시 설명드릴게요!"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40 [의사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