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소변줄
"여기 누워보세요. 머리는 저쪽으로 두시면 됩니다"
"아휴 죽겠다. 빨리 좀 해줘. 힘들어"
환자의 하복부는 팽만이 심한 상태였고, 작은 압력에도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응급의학과에서 삽입한 도뇨관(foley catheter)은 16fr.(도뇨관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로 현재 환자의 상태를 처치하기에는 부족한 두께였다.
"환자분 지금 들어가 있는 소변줄을 제거하고, 조금 더 두꺼운 소변줄로 교체하겠습니다. 그래야 방광 안에 있는 피떡(혈종, Hematoma)을 제거할 수 있어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참아주세요. 빼겠습니다!"
도뇨관 끝에는 balloon(풍선)이 있는데, 방광에 도뇨관을 삽입하고나면 이 풍선을 부풀려 소변줄이 방광내압으로 인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도뇨관을 제거할 때에는 이 풍선에 들어있는 증류수를 제거한 뒤 소변줄을 잡아당겨야 한다.
"악! 살살해! 살살!"
"이제 다 빠졌어요. 여기 조금 사이즈가 큰 도뇨관을 넣을 건데 조금만 더 참으실 수 있겠어요? 못하시겠으면 진통제를 드릴게요"
"아녀, 빨랑 해 빨랑. 아프니까 한 번에 좀 넣어줘"
"자, 이제 소변줄 다시 넣을 거예요. 입으로 숨 쉬세요!"
"악! 아고고 나 죽네."
"이제 다 들어갔어요. 간호사쌤! 여기 irrigation(세척)할 것 좀 가져다주세요!"
조금 더 큰 직경의 소변줄이 환자의 요도를 통해 방광에 거치되었고, 팽만되어있던 방광의 압력 탓에 소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암갈색의 소변이 흘러나오는 도뇨관 끝에 관장용 주사기를 삽입하고는 강하게 힘을 주어 방광 안의 혈종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후드드득]
방광 안에서 혈종이 흐드러지며 관장용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관장용 주사기를 이용해 생리식염수를 방광 안으로 주입한 뒤 다시 빼내길 10여분. 방광의 혈종은 대부분 제거된 것으로 보였다.
"여기 보세요. 방광 안에서 피가 굳어서, 선지처럼 되어있었던 것을 모두 제거했어요. 고생하셨어요"
"아휴. 죽겠네. 맨날 이러고 어떻게 살어. 이거 어떻게 해결 못해?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거야"
"방광 점막 위로 노출된 혈관들이 파열되면서 그랬을 거예요. 지금도 소변이 완전히 깨끗하게 나오는 상황은 아니니까 세척액을 이용해서 방광을 조금 더 씻어내고, 세 시간 정도 뒤에 소변 색을 다시 확인할 거예요. 색이 괜찮으면 오늘 퇴원하실 수 있어요."
방사선 방광염 환자는 Intractable hematuria(고질적인 혈뇨)를 호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방광에 고인 혈액이 완전히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변줄을 통한 혈종의 제거가 가능했지만, 시간이 흘러 더욱 단단하게 응고된 혈종(hematoma)의 경우에는 소변줄로의 제거가 힘들고, 방광내시경을 통해서만 제거가 가능하다.
"지금은 일단 여기 누워서 쉬시고, 이따가 세 시간 뒤에 소변 색 확인하러 올게요!"
"그려, 고마워. 고마워. 이제 살겄어"
모든 처치가 끝난 뒤 환자를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백발의 환자는 모든 처치가 끝나고 나서야 환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39 [의사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