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회에 단 2명이 참석한 작가
미국의 한 신예 작가가 첫 소설을 출간한 기념으로 사인회를 열었다. 작가 배닝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참석했지만 첫 사인회 결과는 처참했다. 이날 배닝에게 사인받은 독자는 달랑 2명이었다. 배닝은 전날 있었던 일을 공유하며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SNS에 올렸다. "사전조사에서는 37명이 와주신다고 했는데 2명 밖에 안왔다, 솔직히 좀 속상하고 창피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작가들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녀에게 응원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인회 망한 작가 클럽에 가입하세요. 제 사인회에는 아무도 안왔어요, 스카치 테이프를 사고 싶은 남자 한명이 왔을 뿐이죠. 제가 직원인줄 알았나봐요." 그중엔 세계적인 공포물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킹도 있었다. "손님 한 명이 있었어요, 통통한 남자 아이였죠. '나치 관련 책 어딨는지 알아요?'라며 제게 묻더군요." 여러 세계 유명 작가들의 훈훈한 답글이 이어지면서 배닝에게 응원을 보냈다.
출처: "사인회, 2명 와서 창피" 신예작가 SNS 고백 후 일어난 기적, 뉴스1 김송이 기자, https://www.news1.kr/articles/4888755
처음으로 책을 출간한데다 사인회까지 앞둔 배닝은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뿌듯했을 것이다. '일단 37명이 사인회에 와준다고 했으니, 응답하지 않았지만 오게 될 경우까지 생각해보면 한 50명 정도는 오지 않을까?', '내 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긴장해서 사인을 잘못 하면 어쩌지?'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사인회장에 도착했을 배닝. 그런데 웬걸, 오겠다던 삼십여 명은 어디 가고 겨우 두 명의 독자가 전부임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상상해보자. 이전까지의 자부심과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한 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창피하고 민망했고, 오겠다고 하고선 오지 않은 독자들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나라면 이 경험담을 쉽게 터놓지 못했을 것 같다. 누군가 '사인회 어땠어?' 물어보면 '뭐 괜찮았지.' 얼버무리고 말았을 것이다. 누군가 사인회 후기에 대해 물어볼까봐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배닝은 그러지 않았다. 애써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속상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용기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게 해주었고,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안심하고 마음이 놓였다. 위로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편안해졌다. 그녀가 용기를 낸 덕에, 이 일은 그저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흑역사'로 남지 않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로 유명세를 탄 그녀의 책은 아마존 판타지 장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드러내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하찮아보이지 않을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결국 자기의 약하고 부족한 면을 숨기기 위해 '멋지고 화려한 나'로 무장을 한다.
그러나 그 무장은 너무나 약해서 조금의 비난에도 쉽게 금이 간다. 이렇게 약한 무장으로 자기 자신을 지키려다 보니, 누군가가 자기의 약한 면을 지적하거나 궁금해 하면 날카롭고 공격적인 반응으로 대응한다. 혹은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나만의 심리적인 안식처로 도망간다. 도망간 그곳에서는 무장을 벗지 않아도 되지만, 그 댓가로 고립되고, 불안하고, 외롭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꽁꽁 묶인다.
자랑스러운 모습만 보이려는 이러한 경향은, 인정과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잘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면 사람들은 나에게 찬사를 보낼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의 무장 즉 껍데기를 향한 찬사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속에서 '진짜 나'를 보이는 것은 점점 더 두려워진다. 또한 나를 향한 칭찬과 인정이 줄어들면 쉽게 불안정해진다.
자랑스럽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이들은 사람들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누구보다 호감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깊은 관계로 이어지진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항상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은 인간미가 없지 않은가? 용기를 내 '진짜 나'를 보여줄 때, 비로소 상대방과 연결될 수 있다.
애써 괜찮은 척 하지 말고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작가 배닝이 그랬던 것처럼 생각지 못한 따뜻한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판단하지 않는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의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좋다. 이 경험을 통해 깊은 내면에 숨겨뒀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건 자신의 수치심을 직면하는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