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나만 양보하지?'
지연님은 귀여운 외모의 20대 여성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밝고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주었다. 지연님은 남들이 싫어할 법한 말은 잘 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편이었다. 대인관계가 좋았던 지연님에게 언젠가부터 남 모를 고민이 생겼다.
'왜 항상 나만 양보하지?'
누구에게 털어놓기는 어려운 생각이었다. 왜 나만 양보하나, 하는 생각은 곧 다음의 생각들을 이끌었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을 만큼 양보를 많이 한 게 맞나?'
'이정도는 남들도 다 하는 정도지.'
'내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면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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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단합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계절에 비해 유난히 뜨거운 햇볕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륵 흘렀다. 더욱이 주말에 억지로 이끌려 나왔으니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드시고 하세요~"
반가운 소리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장 빠르게 나선 사람들이 먼저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곧 지연님의 순서가 돌아왔다. 남은 아이스크림 중엔 지연님이 좋아하는 콘 아이스크림이 남아 있었다. 딱 한 개. 지연님이 싫어하는 과일맛 아이스크림도 남아 있었다. 꼭 콘 아이스크림이 아니어도, 저것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지연님은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고르세요~"
그 말에 동료들은 하나 둘 아이스크림을 골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남은 것은 지연님이 가장 싫어하는 과일맛 아이스크림뿐 이었다. 지연님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항상 나만 양보해?! 아니, 내가 먼저 고르라고 했으면, 한번쯤 사양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것만 먼저...'
아이스크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연님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안그래도 더운 날씨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동료들은 지연님이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길 기다리면서 벌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힘 없이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집어든 지연님은 동료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마음 같아선 아이스크림이고 뭐고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힘없이 아이스크림만 바라볼뿐 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미루어주는 것은 배려가 돋보이는 행동이지만, 중요한 것은 양보 이후 나의 마음이다. 뿌듯하고, 왠지 자부심이 느껴지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는가? 아니면 뭔가 억울하고, 화가 나고, 자괴감이 느껴지는가? 만약 후자라면 나의 양보하는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양보하는 습관이 생겼을까? 지연님의 경우, 나이 터울이 나는 동생과 함께 자란 맏이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지연님은 항상 동생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런 지연님을 보고 부모님은 기뻐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역시 우리 딸은 착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지연님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지연님이 동생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을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때 엄마는 '다 큰 애가 어린 애기한테 왜그러니', '네가 양보해야지' 라며 지연님을 나무랐고 때로는 매를 때리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생이 애기였을 땐 지연님 역시 애기였다.
지연님은 또 다른 날도 기억해냈다. 동생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해주지 않고 기어코 싸운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 아빠가 돈이 없어 넉넉히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지연님은 암묵적으로 배우게 됐다. 내가 양보하면 우리 가족들이 행복해지는구나.
이러한 경험들은 양보를 해야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양보를 해야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신념을 남겼다. 이를 비로소 인식하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양보를 하고 있는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 메뉴를 선택할 때도, 회사에서 추가적인 업무 요청이 들어올 때도, 친구들과 여행 장소를 고를 때도,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나 대신 동료를 승진시키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지연님은 항상 말했다.
"전 괜찮아요."
"전 아무거나 좋아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지연님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지연님은 회사에서도 너무 많은 업무를 떠안고 있었다. 이또한 양보를 하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꾸역꾸역 맡아서 하고는 있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팀장님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상상을 하던 것만 수십번이었다.
나는 습관적인 양보를 하는 삶을 살았구나.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양보하며 살아온 내면아이를 만난 지연님은,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식사 메뉴를 정할 때, 무조건 상대가 먹고 싶은 음식에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이야기했다. 평소처럼 양보하는 말이 나올라 치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무조건 양보할 필요는 없어.' 팀장님에게도 자신의 한계에 대해 표현하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그것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막상 말하고 보니, 상황은 지연님의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흘렀다. "아 그래요? 그럼 이건 O대리가 맡아줄 수 있을까?"
마음속에 억울함과 분노는 점차 가라앉았다. 양보만 할때보다 더 인정받고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하지 못할 말들을 해내고,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자신감도 부쩍 늘었다. 자신이 기꺼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보다 상대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때 양보를 했다. 고마움을 표하는 상대방을 보며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습관적인 양보는 해롭다.
양보만큼이나 나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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