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감정적인 엄마가 두렵다
그를 만난건 지난 겨울이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왔다는 그의 첫 마디에, 연인과의 이별로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여느 커플처럼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던 어느날. 어머니의 반대로 갑작스레 여행을 취소했고, 이를 이해해주지 못한 여자친구와 크게 다툰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결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얼핏 사소해보이는 이 일로 헤어지기까지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고, 헤어진 여자친구가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자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단지 여자친구와 헤어진 슬픈 마음을 다루는 데서 끝날 일이 아닌듯 했다. 섣불리 말하기 전에 그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 많았다. 좀더 많은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는 착한 아들이었다. 유별나게 효자는 아니어도 지금까지 엄마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대학을 선택하고 진로를 정했다. 취업을 할때도 엄마가 중시하는 기준을 고려하여 취직하였다. 엄마는 남편 없이 자녀들을 키워야 했기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자녀들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동시에 감정적이었고 화를 굉장히 잘 내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도 불같이 화를 냈고, 그렇게 화를 낼 때는 누구도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화를 낼 때 엄마는 매우 무섭고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능한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사소한 일에 화를 냈다. 왜 우유를 냉장고에 바로 넣어두지 않았냐, 왜 비 예보가 있는데 창문을 열어뒀냐.. 우유가 상하지 않았고 비가 집안에 들이치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화를 냈다. 그는 커가면서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화를 가라앉힐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자신이 조심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엄마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들이 연애 하는 것을 축하하고 반가워했다. 엄마는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관심이 많았고, 언제 한번 같이 놀러오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앞으로 며느리를 들이게 되면 엄마 마음의 외로움이 좀 가시지 않을까, 그는 그런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터졌다. 여자친구와 여행 가기 전날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여자친구와 여행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는데, 여행 전날 우연히 말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크게 화를 냈다. 내일 엄마 병원가는 날인거 알지 않느냐, 어떻게 엄마를 두고 여자친구와 여행을 갈 수 있느냐 등등. 그는 최대한 엄마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이미 극도로 화를 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돌리기는 역부족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는 성인인 그가 엄마의 허락을 받지 못해 여행을 취소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혼자 다니시곤 했던 병원인데, 왜 그게 갑작스런 여행 취소 사유가 되느냐고 따졌다. 그는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여자친구가 서운했다. 결국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갈등이 반복되다가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다. 자신이 나쁜 아들인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여자친구가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소년기의 자녀가 말을 안들어 걱정이라는 부모의 고민을 들으면 (지나친 수준이 아닐 경우) 으레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씀드리곤 한다.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와 싸우고, 부모를 이기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며,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세우기 위한 필수적인 과업이다.
그러나 엄마가 지나치게 화를 내고 감정적이라면 어떨까? 그에게 엄마는 사랑하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엄마가 돌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에게 공포에 가까웠다. 엄마는 아들이 엄마와 분리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엄마는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 많았다. 그가 엄마로부터 독립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엄마를 버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며 아들을 비난했고, 그가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기 보다 타인지향적으로 살게 되었다. 상대가 화내는 것이 두려워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적응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만의 진정한 감정이나 욕구, 경험들은 눌러두게 되었다. 그런 그의 내면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그를 예민하고 공격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는 냉정하고 무섭게 화를 냈다. 그가 두려워하는 엄마처럼 말이다.
얽히고설킨 내면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이 있었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머물러보고 이를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에 충분히 머물러보는 경험이 부족했다. 나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는 대신, 엄마의 감정을 추론하고 예상하느라 바빴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엄마가 극히 화를 내는 상황)를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힘과 능력이 없었고, 아동에게는 보호자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이런 노력이 꼭 필요했다.
그는 자신만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도 잘 알지 못했다. 어렸던 그가 울고, 화를 내고, 시무룩 할 때 지금 그가 어떤 감정인지 반영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단어로써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공감해주지 않으면, 커서도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내 감정 당연히 내가 잘 안다'고 대부분 말하지만, 실제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감정을 반영해주고 공감받으면서 자아가 발달하면,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알게 되고, 나 자신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그는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과 자기 자신만의 감정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경험하는 심리적 공허감이 자신의 일인것 마냥 부담감을 느꼈고,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어머니가 주입해 온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나쁜 감정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학습된 부정적인 감정들은 작은 사건에도 쉽게 유발되어, 그는 남들이 하는 사소한 말들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고 화를 내게 되는 모습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행을 가기 위해 엄마를 버렸다는 엄마의 비난을 들으며 우울,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와 여자친구를 실망시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엄마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받아들였고, 심지어 엄마가 느낀 감정보다 더욱 부정적으로 극대화하여 경험하게 되었다. 엄마에 대한 공감이 오히려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이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내 감정보다 엄마의 감정을 먼저 읽고 조심하는 것은 한때는 그에게 적응적인 방법이었다. 어렸던 그가 살아남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머니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분리하여 자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고착된 감정임을 깨달을 때, 나 자신을 위한 건강한 경계를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