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화 장애
유행하는 노랫말들을 보면 '너때문에 가슴이 아파', '심장이 아파'라고 말하는 가사들이 많다. 이런 가사들이 그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닌듯 하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등의 '가슴 아픈' 상황에서 가슴이 찌르르르 하고 저릿해지며 아파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생각은 머리로, 뇌로 하는데 왜 심장이 아플까?
저는 소화가 안되고 몸에 힘이 없어요. 심장쪽에 통증도 느껴지구요. 그래서 피검사도 해보고 여러 가지 검사들도 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네요. 정말 답답해요. 정신과에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주셔서 하는 수 없이 왔지만, 저 정신은 멀쩡해요. 우울하지도 않고요. 왜 여기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신과에서 일하다 보면 심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본인은 스트레스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심리검사 결과 및 증상이 우울증 진단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우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병원에서는 이를 두고 병식(insight)이 없다고 표현하는데, 치료 예후를 좋지 않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조현병과 같이 현실검증력이 떨어지는 환자분들 중에는 망상과 환각을 현실과 구별하지 못하는, 병식이 없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정신증이 아닌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중에도 병식이 없는 분들이 드물지 않다. 아마 병원이나 상담실 바깥 장면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생물학적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엑스레이처럼 어디가 부러진 걸 확인하는 것도 아닌 것이 정신과 진단이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들이미는 것도 아니면서 '당신은 우울증입니다' 하니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도 이해가 된다. 더군다나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거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 몸은 하나의 유기체다. 가슴이 아픈데 머리는 개운할 수 없다. 검진으로 확인되지 않는 원인 모를 통증이 지속된다면,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는다면, 소화 불량이 반복된다면, 실제로는 내 마음이 괜찮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마음에서 감정이 인지되지 않아서 몸이 대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너 지금 괜찮지 않아. 위로가 필요해. 휴식이 필요해. 애정이 필요해."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신체화 장애라고 한다. 신경학적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한다. 관련 검사를 해도 원인이 발견되지 않으니 주위에서는 꾀병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으나, 2차적 이득을 목표로 증상을 일부러 꾸며내는 꾀병과는 분명히 다르다. 상당한 주관적 고통을 경험하므로 단순히 엄살이 심한걸로만 넘겨서도 안된다.
신체화 장애를 경험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대개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인지하는 것 자체도 꺼려하는 분들이 많다.
우울, 분노,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인식하기도, 표현하기도 불편하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오로지 긍정의 힘으로만 어려움을 견디려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필수적인 기본 감정에서 긍정/부정의 개념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필요하다. 정말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슬프고 화가 나는 감정들도 자신의 감정임을 수용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사람이 정말 건강한 사람이다.
누군가 내 뒷통수를 때리면 화가 나는 게 정상이다. 내 곁에 가까운 누군가가 떠난다면 슬픈 게 정상이다. 나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하느라 고군분투한다면 지치고 억울한 심정이 드는 게 정상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솔직해져야 마음에 감정의 잔여물이 쌓이지 않는다. 그래야 기쁜 일이 생겼을 때에도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나의 감정에 솔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