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

레이첼, 강간으로 낳은 그녀의 아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사랑

by 해리

분쟁 광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 키부(Kivu) 주의 눔비(Numbi)라는 광산으로 향하던 우리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을 맞이했다.

우리의 현지 통역사였던 로버츠는 출발 전부터 계속해서 미노바(Minova)에 있는 ABDUD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길 간곡히 권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눔비에 가기를 원했지만 가는 길에 미노바가 있으니 잠시 들리기로 했다. 속으로는 그곳에서 한 시간 이상 머무르지 말자는 나름의 데드라인까지 생각하면서 키부호수 북서부의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몇 시간을 달렸다.


미노바에 도착하자 약간은 우려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고아원 앞에는 고아원생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모인 듯 약 1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우리의 차가 주차를 위해 접근하는 순간 북을 치며 합창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이런 과장된 환영식은 보통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에 의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냥 순수하게 고마워하기 어려운 상황을 속으로 씁쓸해했다.


분쟁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행동이었고, 특히나 세상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분쟁 기간이 너무 오래된 콩고 같은 곳에서는, 외지에서 온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과장을 더해서 어떤 구세주와 같은 존재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 같은 외부 단체가 다녀간 후 어떤 형태의 지원금이 보내진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늘 난감함을 느낀다.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그들에게 실망을 주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길 바란다는 희망만을 조심스럽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로버츠에게 우리가 이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하지만 고아원 투어 중 어느 방으로 이끌려 호스트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예견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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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콩고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만남은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레이첼이라는 30대 여성이 이 고아원과 ABDUD의 실질적인 운영자였는데, 그녀는 제2차 콩고 전쟁(1998-2003, 대략 600만 명이 희생된)에서 성폭력이 어떻게 전략적 무기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작고 통통한 체구에 콩고 여성들이 즐겨 입는 화려한 색상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와 함께 판잣집의 어두운 방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13살 때 전쟁이 시작됐어. 그리고 어느 날 밤, 무장 반군이 우리 마을에도 들이닥쳤어. 한동안 이웃집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에 우리는 도망도 못 가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 군인들이 우리 집에도 찾아왔어… 그들은 아버지를 칼만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조각내 죽이고, 먼저 엄마를 집단으로 강간했어. 그리고 그다음은 나와 내 동생의 차례였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계속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무서웠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범했는지, 어느 순간에는 기절해서 기억도 안 나는데… 한편으로는 차라리 기절해서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웠어. 그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 모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와 내 동생 모두 임신한 걸 알게 되었고. 너무 수치스러웠어. 부정하고 싶고, 악마 같던 나를 범한 자의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어. 만약 자식을 낳으면 그를 볼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되돌아와 나를 옭아맬 것만 같았어.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아버지가 누군지 차마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


레이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괜스레 그녀를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했나 미안해져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잠시 후 진정한 그녀가 이어갔다.


“한데 엄마는 병상에 누워 본인 또한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 내게 얘기했어. 어떻게 태어났든 여전히 너의 아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사랑으로 더 보란 듯이 키워내라고. 엄마는 심지어 우리처럼 강간의 결과로 아이를 낳고, 가족들로부터까지 버림받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어. 그리고 결국, 없는 형편에 그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쉼터를 제공했어. 그게 오늘날 APDUD(Association des Personnes Desherites Unies pour le Devemlopment; 버려진 이들의 자활연대협회)의 시초였어. 그렇게 엄마는 성폭력 피해자와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여생을 바쳐오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그리고 나는 어리석게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야 엄마가 이 세상에 구현하려 했던 사랑의 힘을 믿게 되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마마 마시카를 잊지 않고 있고, 난 엄마가 시작한 이 공동체를 어렵지만 계속 운영하고 있고.”


레이첼의 어머니 이름이 낯이 익어 촬영 중간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 기사로 접했던 마시카와 동일 인물이 맞았다. 한국에서도 ‘나비기금(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의 전시 성폭력피해자 지원 연대 기금)’의 첫 지원대상자였던 바로 그 인물이 레이첼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렇게도 인연이 닿는구나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지금 고마에 갔어. 한창 음악 밴드를 이끌고 있는데 무슨 장비를 사러 갔다가 내일쯤 돌아올 거야.”

“아들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고 있나요?”

“응. 아주 착한 아이야. 늘 내 걱정을 하는. 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스티브한테 직접 들어봐”


마음속으로 난 이미 스티브를 만나고 있었다. 광산에서의 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이곳에 다시 돌아와 아들을 만나고 이 모자의 관계도 우리 다큐멘터리에 담자고 제안했고, 레이첼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후 미노바를 떠났다.


천국 같은 풍경 속의 지옥


눔비로 가는 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지옥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땅치고는 너무나 푸르르고, 언덕을 돌 때마다 살짝씩 모습을 드러내던 키부 호수의 광활함과 온갖 색깔의 꽃과 열매들을 보며 레이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이곳을 천국이라 표현했을 것이다. 태초의,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4WD 차량으로 가다가 더 이상 차량이 통과할 수 없는 곳에 이르자 짐을 오토바이에 나눠 싣고 두 시간가량을 비포장 도로와 곳곳에 진흙탕 위로 때로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밀기도 하면서 겨우 헤쳐나갔다. 근방에는 현지인들이 머리에 생필품을 이고 몇십 km에 달하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눔비는 차량이 닿지 않는 마을치고는 규모가 꽤 컸다. 아마도 광산 때문에 발달된 마을인 듯했다. 여전히 너무나 푸른 풍경에 도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광산이 있을지 상상이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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눔비에 있는 동안 문득문득 레이첼과 그 가족이 겪었을 공포를 상상하며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부인과 딸들이 여러 명에게 유린당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이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기억이라면.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잔인하게 조각조각 잘려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악마들이 아버지의 몸 일부를 먹으라고 강요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을 평생 기억으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전쟁의 본질: 문명의 탈을 벗은 인간


인간은 얼마나 더 잔인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을 하게 만든다.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문명의 토대를 순식간에 허물고, 너무나 기괴하고 잔인한 행위를 일상으로 변모시키는 파괴력을 가진다.


내가 살던 평화로운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여기서는 실제로 일어났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본능을 해방시킨다. 이성과 양심이 찢겨나가고 생존이라는 명제만 남았을 때, 우리는 짐승만큼 잔혹해질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은 계산된 잔혹함을 보일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잔혹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문명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런 극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때문에 모를 뿐이고, 설사 안다 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애써 외면할 뿐이다. 하지만 내게 들려준 레이첼의 이야기는 그런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했다.


그런 환경에 놓이면 아무리 순한 사람도 자신도 모르는 악마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쟁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결과물일 테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고통을 겪고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회복력을 발견하는 것 또한 그런 극한 상황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의외의 선물일지 모른다. 멀리 찾아볼 필요 없이, 한국도 70년 전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이 만연했던 시기를 겪고 이겨낸 후 지금의 한국을 일궈낸 것처럼.


소년병의 담담한 고백


레이첼의 이야기로 인류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해 있을 때, 패트릭을 소개받았다.

말도 없고 사교성도 없어 보이던,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이 16세 소년은 소년병 출신이었다.


“3~4년 전에 무장반군이 들이닥쳐 강제로 그들의 조직에 편입됐어.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정글 안에서 계속 이동하고 마을을 공격했어. 처음에는 당연히 총 한 자루도 제대로 쥐지 못했어. 반군 어른들은 우리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끼리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 또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방금 죽인 사람들처럼 간단히 저 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하며 우리를 세뇌해 갔어. 우리는 조금씩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우리가 죽인 사람들이 악몽으로 돌아와 괴롭히던 시기를 겪었지만 그 행위가 반복이 되면서 우리가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점차 무뎌져 갔어.”


“너도 직접 사람을 죽여봤어?”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 응. 생매장을 해본 적도 있고 그리고… 누군가를 살아 있는 채로 불에 태워 죽여보기도 했어.”


패트릭이 방금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눈치 보듯 하면서도 분명하고 차분하게 전하는 패트릭에게서 나는 역설적으로 강한 연민을 느꼈다.


이미 반인류적인 행동을 해버린 이들은 자신의 과오가 너무 커 더 이상 구원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 피의 맛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삶을 살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어린 친구는 환경에 의해 휘둘린 자신의 과거를 오히려 떳떳이 인정하고,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눈빛과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다시는 그 길로 빠져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패트릭은 눔비에서 다른 소년병 출신들의 자활을 위한 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마마 마시가가 다른 피해 여성들을 위해 공동체를 만든 것처럼,ㅡ 패트릭도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패트릭은 그 대화 이후 자발적으로 무거운 장비를 대신 들어주며 우리를 묵묵히 따라다녔다. 나는 그의 동행이 나쁘지 않았다. 눔비에서의 마지막 날, 그동안 도와줬던 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패트릭이 할 말이 있다며 따로 얘기할 수 있는지 물었다. 주저함이 많아 보이던 그의 태도에서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듯했고, 그 예감은 맞았다.


“이런 얘기하기 쉽지 않은데… 사실 그때 얘기했던 소년병 출신을 위한 그룹을 운영하는데 좀 어려움이 많아. 사무실 월세를 석 달째 못 내서 다음 달이면 사무실을 비워줘야 하는데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며 그와 친밀감이 쌓이고 그의 인성에 대한 믿음이 생긴 나는 그렇게 어렵게 얘기 꺼내는 그가 내심 고마웠다.


“돈 안 준다고 나 생매장하거나 하지 말아 줘. 나 아직은 살고 싶어. 얼마나 필요해?”


나의 조금은 부적절한 농담에 찰나의 미소를 보인 그는 월세가 한 달에 20달러라고 답했다. 기꺼이 내주고 싶고 내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동시에 콩고에 온 이래 부패한 군인들과 정부 관료에게 뜯긴 어마어마한 비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금 더 넉넉하게 돈을 주자 이 어린 친구는 석 달지만 도와줘도 그들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며 나머지를 돌려주려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녀석이었다.


스티브: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미노바로 돌아가 레이첼의 아들 스티브를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내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근거 없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나의 모든 고정관념은 산산조각 났다. 레게 머리를 길게 땋은 힙한 옷차림의 건장한 체구의 스티브는, 어떻게 보면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그 허구의 인물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늘 걱정하는 어리지만 책임감 있다고 한 레이첼의 묘사로 난 왠지 조금은 수줍어하는 모범생 타입을 상상했던 것 같은데, 유명한 뮤지션의 꿈을 품은 자기애가 강한 젊은이 같다는 것이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속으로 스스로를 질책했다. ‘대체 무슨 생각한 거야?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겉으로 무언가 다를 거라 기대한 거야?’ ‘아니면 그 아픔에서 평생 짓눌려 사는 불행한 영혼일 거라 생각했던 거야?’ 그저 또래의 다른 청년들처럼 평범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했던 내 편협함이 부끄러워졌다.


대화를 나눌수록 레이첼이 말했던 그의 속 깊고 사려심 깊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내 성급한 판단을 반성했다.


“너의 출생에 관한 진실은 언제 알게 됐어?”


“어렸을 때 이미 어느 정도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한 건 아마 다섯 살 무렵쯤? 내가 아주 어렸는데도 그때 이미 느꼈어. 엄마가 나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그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망설임 없이 말하곤 했어. ‘역겨운 악마의 자식’이라고. 학교에서는 그나마 나았어. 패트릭이라는, 지금은 반군에 합류한 나보다 덩치 큰 친구가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늘 보호해 줬거든.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엄마의 경멸스러운 눈빛과 가시 돋친 말들을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했어. 솔직히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스티브는 차분하게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증오도 점차 가라앉는 듯했어. 지금 돌이켜 보면,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결국 분노로 가득 찼던 엄마의 마음도 변화시킨 것 같아. 내 안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준 것도 할머니였는데, 그 음악을 통해 난 엄마와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어. 엄마에게도 음악은 큰 치유의 원천이었어서. 솔직히 어릴 때는 엄마가 왜 그토록 나를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데 나이가 좀 들고 콩고에서 여성들이 감내하는 고통의 깊이를 알게 되면서는 엄마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고. 그래서 빨리 성공해서 우리 엄마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베스트 프렌드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그 어린 나이에 출생의 진실은 분명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마시카는 괴로워하던 어린 스티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우린 널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거야.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나 네가 강간의 결과로 태어났다는 진실이,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 절대로. 이 사회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렴. 네 감정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우, 늘 네 안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려운 이들에게 더 큰 자비 베푸는 사람이 되렴. 내가 너를 도와줄 거야. 그리고 네 엄마도… 지금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서서 너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절대 너를 진심으로 미워해서가 아니란다. 시간을 주렴. 결국엔 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을 품게 될 테니.”


스티브가 어머니를 위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촬영할 때, 어머니를 향한 의 따뜻한 마음도 카메라 앞에서는 어색하게 표현되었다. 나는 그를 따로 불러 얘기했다.


“네가 언젠가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어 끊임없이 세계투어를 하느라 콩고를 떠나 있었다고 상상해 봐. 그리고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엄마와 재회하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벅찰지 떠올려 봐. 그 마음으로 노래해 봐.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너의 엄마를 마주할 때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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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가족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얼마 전 스티브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반군과 정부군 간의 국지적 전투가 재발하여 가족들과 고아원 아이들을 데리고 미노바를 떠나 고마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마저 반군이 점령하기 시작했고, 외국인들은 이미 모두 대피한 상황에서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며 두려움을 토로했다.


나는 그에게 중심을 잡고 레이첼을 위해서라도 더 강인해지라고 얘기했지만, 문득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곳의 희생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레이첼과 스티브 - 과거의 상처를 딛고 서로를 보듬으며 치유해 온 둘 간의 평화로운 삶이, 또다시 전쟁의 공포 속에 휘말리는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힘겹게 서로의 유일한 의지처가 되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콩고의 불안정한 현실이 또다시 강력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이 지독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지, 나는 의문을 품으며 무거워진 심정으로 그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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