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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8. 2019

이런 사랑스러움이 있어 견뎌지는구나.

매일의 두 가지 마음

얼마나 걸렸더라. 드디어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후련한 성취감으로 안방에 들어왔다. 남편은 야간작업으로 아직 밖이었고 침대에는 아이가 잠들어있었다. 가만히 아이 얼굴을 본다. 옷이 자꾸 성가신지 며칠 째 벌거벗은 기저귀 바람이다. 그래 봐야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은 세 살 아가지만, 이제 제법 어린이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이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 더 이전부터였다.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그 식상한 생각들이 반복될 때마다 이런 느낌이 든다.

표정이 더 다양해지고 얼굴이 더 오밀조밀해지고 몸짓이 더 자신만만해질수록, 몸은 아직 많이 자라지 않았는데도 훌쩍 커 버린 아이를 느낀다. 슬며시 평온하게 감긴 눈과 예쁜 속눈썹, 둥근 코와 보드라운 볼, 야무진 입술 위에 오 년 후쯤, 십 년 후쯤의 아이 얼굴을 상상해본다. 부쩍 사내아이의 태가 훅 하고 올라오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그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테고, 그 맘 때는 지금처럼 아이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렇지 않으리라 오기를 부리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아이 볼에 대고 뽀뽀를 하고 잠시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저 사랑스럽고 예쁜 얼굴.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감탄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서 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다. 힘든 날도 많은 육아지만 이런 사랑스러움이 있어 견뎌지는구나, 생각했다. 너무 예쁘다. 그러고 있자면, 나중엔 품에 끼고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이 꼭 꼬리처럼 따라온다. 하루가 왜 이리 느리게 가나 싶으면서도 빠르게 사라지는 하루가 아까운. 그런 두 가지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2019. 9. 8

첫 아이 태어난 지 679일,

뱃 속의 둘째는 16주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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