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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8. 2019

그러거나 말거나 뱃속의 아이는 자란다

이 또한 나름의 태교이고 그러니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제법 배가 불룩하다. 가슴도 꽤나 부풀었다. 4kg이 빠졌던 몸은 다시 슬슬 제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 토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는 날이 많고 비교적 좋은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임신 중일 때와 아닐 때는 몸의 상태가 천지차이. 삼십 분 이상만 걸어도 몸이 피곤해 쉬고 싶고 평소 하던 집안일에도 숨이 찬다. 앉았다 일어서면 현기증이 심하고 나른함 때문에 낮잠 없이는 하루가 힘들다.

그래도. 매일 네댓 번 이상을 토하던 입덧 시기가 지나니 정말 살 것 같다. 벌써 입덧의 고통을 잊은 것만 같다. 하지만 속이 메스꺼워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하고 있자면 ‘아, 맞아. 이 느낌이지’ 하고 다시 입덧의 고통이 생생해진다. 그럴 때마다 출산할 때도 똑같이 ‘이 느낌이었지’ 하고 아파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함께 스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몸의 기억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다시 한 두 달 전의 극심한 구토 증상은 없을 테니 그것이 큰 위안이다. 이러면서 어느새 임신 17주 차, 5개월이 되었다.




둘째 임신 때는 태교고 뭐고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 첫 아이 때는 심장소리 듣던 날 기념하며 파티도 하고 처음으로 아기 옷도 사고 태중 기록도 열심히 하고 내 밥도 꼼꼼히 차려먹고 블랭킷도 짜주고 기분 나쁠 만한 글은 읽지도 않고 책도 자주 읽으려 하고 그랬는데... 둘째는 그런 거 없다. 일단 아이와의 일상으로 하루가 꽉 차고, 재우고 나서는 기력이 없기 때문에 바로 자든가 아님 누워서 핸드폰만 까딱거린다. 그나마 오후에 어머님이 한 타임 와서 아이를 봐주시니 그동안 잠도 보충하고 아이 먹을 것도 챙기고 할 수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몸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뱃속 둘째는 잘 크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제법 꼬물거리는 태동이 느껴진다. 초반의 ‘이게 태동인가 그냥 가스 차서 꾸륵거리는 건가’ 시기를 지나고 뽀글거리는 느낌과 ‘톡톡’ 느낌이 번갈아가며 느껴지는 때가 왔다. 본격적으로 태동이 찾아오는 이 맘 때가 되면 불룩한 배가 더 좋아지고 임신이 행복해진다. 첫 아이 임신하고 배 불러 돌아다닐 때, 문자 그대로 정말 행복했는데, 그 감정이 다시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그렇지만 아무리 행복한 임신이어도 두 번 입 덧 겪으니 세 번은 하고 싶지 않아. 정말 정말, 그건 안 될 말이다. 휴.)

어제는 아이에게 “사랑이, 바다 사랑해 줄 수 있어?” 했더니 아이가 듣자마자 두 팔 가득 벌려 배를 꼭 껴안아 주었다. ‘엄마, 사랑해줘’ 하면 꼭 껴안아 애정표현하는 것처럼, 뱃속에 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똑같이 사랑을 전 해준 것이다. 며칠 전엔 “사랑이가 배 쓰다듬해주면 바다가 기분 좋아진다?” 알려주니 씩 웃으며 배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 어제의 포옹은 그것의 몇 갑절은 될 것 같다. 알고 그러는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가 싶다. 내가 바라보는 그때의 아이 얼굴이 너무 맑고 예뻐서 품 안에 말로 표현 못할 행복이 차오른다.




첫째와 둘째를 품는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른 게 또 당연하다. 온전히 뱃속 아가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첫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행복감을 전해줄 수 있고 ‘혹시 애기 어디가 잘못된 거 아냐?!’ 하는 초산모의 예민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별일 없으니 잘 크고 있는 거야’ 하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마음이 한결 여유로우니. 이 또한 나름의 태교이고 그러니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남편의 바쁜 일정으로 검진 일정을 미루게 되어 아직 둘째의 성별은 모른다.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좋아. 그러고 있지만 사실 딸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 아이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고기 생각만 해도 속이 안 좋고 느글거리고 틈만 나면 단 것만 당겨서 자꾸만 ‘혹시 딸인가..?’ 그러게 된다. 확신하면 오히려 실망할까 봐 아니야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좋아. 하면서 마음을 진정 중이다. 다음 주면 마음의 줄다리기도 그만할 수 있겠지. 어떤 결과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고 있다.


2019. 9. 18
첫 아이 태어난 지 22개월 19일,
뱃속의 둘째는 17주 4일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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