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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8. 2019

그래서 나는 쓰지 못하는 이야기

<나의 두 사람> 속에서 바라보는 나의 두 사람


요즘은 사랑이의 트램펄린 위에 누워 책 보는 게 그렇게 좋다. 수유쿠션을 머리에 베고, 배 위에는 브라운 곰인형을 올려 두고 그 위에 책을 얹어 읽는다. 아주 편안하고 완벽한 자세다.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사랑이가 잠든 늦은 밤. (가끔 여보가 사랑이를 전담마크해주는 때에 읽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대개 부산스러울 때가 많아 집중하기가 어렵다.) 조용히 누워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마음에 고요가 찾아온다.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며칠을 이어 읽다 드디어 한 권의 책을 끝냈다.



어딘가에서 추천글을 보았던 책이다. 어느 부분에서 이 책이 마음에 끌렸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발췌된 문장이었을까, 추천하는 이의 글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무슨 내용의 책인지도 모르면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무작정 책의 제목을 검색하고 관심도서로 담아두었다. 그리고는 빌려와 몇 페이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줄줄 울며 읽었더랬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도 있는 '두 사람'이 떠 올라 눈물이 나기도 하고 담담하게 적어 내려 간 이야기들이 마음을 건드려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게 그렇게 울 이야기들인가, 싶기도 했지만 글의 힘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는 것.


가족에 관한 글은 나에게 참 어려운 것이다. 결혼 후의 나의 가족 말고, 결혼 전 나의 어리고 젊은 시절의 가족 이야기. 정확히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굳이 글로서가 아니라 기억으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들이 여럿 된다. 더 어린 날에는 그게 나의 가장 약하고 어두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집이 아닌 밖으로 많이 돌았고 가능하면 나 혼자 잘 나서 그들과 무관하게 잘 살고 싶었다. 그 바람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원하던 대로 지금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다. 바람과는 달리 그게 나 혼자 잘 나서는 아니었고 나의 삶이 그들과 무관하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덤덤해지는 게 있다.


상처가 아문 건 아니다. 다만 내가 결혼을 하고, 어른 노릇 하며 돈도 벌어 보고 아이도 낳고 이러며 살다 보니,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시선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그 자리에 머문다. 들춰 들여다보기 어렵고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쓰지 못한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준비가 되면 쓸 수 있을까. (아무렴 안 쓰면 또 어떤가)


지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냥 그 자리에 둔다. 대신 가족에 대해 솔직히 써 내려간 글 앞에선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을 이 사람은 잘 해냈구나 하는 존경심을 담아.



어떤 성실함은 때로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수첩을 채울 수 없는 나날. 할아버지가 느꼈을 막막함과 두려움, 박탈감과 무력함 같은 것들. (...) 물론 지금도 할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온전히 할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했으니까. 다만 살아가면서 짐작의 범위를 넓혀 갈 뿐이다.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는 일을 그래서 항상 늦다. ㅡ 김달님 <나의 두 사람>, p76, 어떤책



작가의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나의 할아버지를 떠 올려 보고 또 나의 어떤 날을 떠 올려본다. 어릴 적 나에게 늘 '어른'이기만 하던 존재들이 점점 작아져간다.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헤어지기 전 품에 안아보는 그들의 마른 몸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내내 그런 것들이 떠 올라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나는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써 내려간 이야기. 놓치고 있던 마음들이 다시 생각났다.



내일 아침엔 할머니한테 전화를 한 통 걸어야지. 사랑이 동생이 사내아이라고 말해줘야지. 미리 대화 주제까지 생각하고선 꼭 전화를 걸어야지 다짐한다. 할머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아들이 든든해 좋다 하시려나, 아님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좋은데 나는 딸이 없어 외롭다 그러시려나. 나는 무슨 쪽이든 생각나는 대로 길게 말하려 노력할 것이다. 말이 많이 채워질수록 할머니의 시간도 함께 채워질 테니. 어떤 내용이든 할머니는 그래, 그래. 응. 하다가 말미에 이리 말하실 테다.


"전화 줘서 고마워"



매번 듣는 그 인사에 다음번 전화는 더 빨리 드려야지 하고, 매번 또 생각보다 늦은 전화를 드린다. 여전히 다정함이 부족한 손녀에게 할머니는 한 꾸러미의 다정함을 더 얹어 주신다. “사랑해” 하고.




2019.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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