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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Nov 17. 2021

손 편지

네가 그랬지

손 편지는 기회가 한 번 밖에 없어 아름다운 것이라고

수정할 수 없기에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반만 믿었어


그거 아니

네가 읽은 거,

그거 한 번에 써 내려간 거 아니야


편지를 쓰는 내가 

내가 되기 위해 견딘 세월을

상상할 수 있니 네게 말을 걸기 위해


시간 속을 구르고 날고 헤쳐 나와

이 순간 가느다락 손가락 사이에 펜을 쥐여주고

우리 얼굴을 생기 있게 만들지


너는 흐느적이는 글자에 기대어

해맑게 즐거워했지만


그거 아니

내 편지에 우연이란 없어

철저하게 계산된

순간의 파편

검은 잉크로 남는 잔해


몇십 년 전에 이미 출발한 것들

결국에는 금이 가 소멸되고야 말 것들


결과를 알면서도 행동하는 것은

늘 어리석은 짓일까?


그렇다면 한 번만 더 실수할 테니 눈감아주세요

결국엔 또다시 펜을 들고야 말 테니


잠시 망설이다가

안녕하세요?

로 시작되는 글을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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