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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May 30. 2019

[두부] 굿바이, 애선스(Athens, GA)

안녕 여러분. 두부는 지금 교환 생활의 끝에 서 있다. 어제부로 모든 시험이 끝났고,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모두와의 작별인사를 위한 작은 파티가 진행되는 기숙사 방의 구석이다. 그래도 많은 이들과 만나고 멀어지는 것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약속된 이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싱숭생숭해지고 있다. 앞으로 사나흘간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짧은 여행을 거쳐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직 미국을 어느정도 즐겼는지도 모르겠고(사실 '즐겼는지도' 모르겠고), 나의 어떤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는지,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목표였던 영어,는 얼마나 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 안에서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즐기는 시간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 쪽으로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미국의 이 학교였어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지금의 두부에게 지금의 이 공간이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뤄오던 주제가 있었지만, 이 공간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오늘도 역시 취향에 대한 이야기인지 나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를 글이다.




#나의_기숙사_방
창밖 풍경

일기에 적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나의 공간에 대한 투쟁을 시작한 열살즈음부터, 나는 '나만의 것'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심했다. 여동생이 하나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다른 가족들과도 많이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정책(?) 상 여동생과 스무살이 되기 전까진 방을 계속 같이 써야했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닌데 남들보다 꽤나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교환학생 생활동안 가장 만족한 것은 네 명이 하나의 거실을 공유하면서 각자 방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학년 시절 송도 기숙사 생활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고 재밌었지만, 세 명이 같은 공간을 공유해도 괜찮던 그때와 나는 또 달라져 있었기에.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싶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각방이 이렇게까지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누워있곤 했다.

나의 방은 이름도 귀여운 버스비 홀(Busbee Hall) 4층에 위치했다. 나의 방의 가장 좋은 점은 버스 정류장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는 것. 그리고 앞이 꽤나 트여있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작은 이 방에서, 나는 많이 웃고, 울고, 차를 타 마시고, 공부도 했다. 혼자 누우면 한참 공간이 남는 퀸사이즈 못미치는 침대 위에서 뒹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깔깔대기도 했다. 맥주 몇 캔을 사와서 바닥에 주저앉아 먹기도 하고, 와중에 몸 생각을 한다며 난데없이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나의 방의 창은 위아래로 길게 자리해 있는데, 석양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외풍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 꿀잠에 딱이었다. 창문을 열어두고 향초에 불을 붙여 올려두면, 방에서 뭘 하든 행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힐링은 분명 할 수 있지만, 당장의 급한 일들에 정신 뺏기지 않은 채로 잘 존재할 수 있는 것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I-field_혹은_IM-field

이곳을 발견한 건 사월 초였다. 아닌가, 삼월이었나. 아무튼 여기에 온지 두 달이 훌쩍 지나고 권태로워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여유롭지만 즐겁고 싶어 몸을 뒤틀던 때에, 우리는 말로만 들었던 이곳을 떠올렸다. 각자 음료를 담은 텀블러를 손에 들고, 빨대까지 꼽아서,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Lake Henrick이라는 꽤 큰 사이즈의 호수가 있다. 우리나라로 굳이 비교해서 따지자면 산정호수 느낌이고(크기는 이보다 작지만) 좀더 푸르르다. 대부분의 호수가 그렇듯 잔잔한 표면 위에 비치는 근처의 풍경들은 우리의 눈을 황홀케 했고, 그 위에 햇빛이 내려앉곤 했다.

Euphoria, Square, 이지금, Sunshine

우리는 햇살을 담은 노래들을 틀었다. 그날의 재생목록은 딱히 남겨두진 않았음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목소리에 청량함이 가득 담긴 그 노래들을 들으며 오랜만에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쉬워졌다. 바로 옆에는 열심히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스쳐지나가고, 앞에는 반짝이는 물결이 펼쳐져 있는 그 잔디에서 오래오래 누워있었다.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소설에 나오는 미국 시골의 한적한 오후가 이런 느낌인걸까 하고 생각했다. 너무너무 한적해서 그를 따라 울타리에 페인트칠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주근깨가 가득 생겨도 전혀 억울하지 않을 햇살이었다.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누워있다는 감각마저 잊을 정도로 그 날에 취해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에어팟을 귀에 하나씩 나눠 끼고 듣던 노래들, 설레는 기분으로 외식을 나가던 발걸음, 사람이 없어 온 버스를 전세낸듯 엉터리 영어로 떠들며 함께 향하던 다운타운, 혼자 담겨있던 다이닝홀, 꾸준히 하는 일에 자신이 없다 말하던 내가 매일같이 향하던 학교 짐(gym), 그리고 너른 도로에 질겁하던 나 자신.

이 학교와 이 도시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하고 가지만, 한 학기 동안 후회는 남지 않았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잃었는지 아직 헤아려보진 않았다. 아직 내 앞엔 이주간의 여행이 남았고, 한국에 가서 돌이켜보아도 충분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별을 목전에 두니 이곳의 구석구석이 자꾸 밟힌다는 사실이다. 남은 하루 동안 조금 더 눈에 담고 조금 더 이야기를 쌓아가보겠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만날 당신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

두부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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