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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May 31. 2019

[서룩] 캐나다 밴쿠버에서 그림자가 된 순간들

  여행 좋아해? 라고 물으면, 사실 모르겠다. 어떤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해? 라면 더더욱 모르겠다. 일 년에 한 두 번 타지에 몸을 실을 때는 거의 동행하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었다. 좋게 포장하면 여행 일정에 욕심이 없는 편, 사실대로 말하자면 의견 없는 핑프(!)인 편. 가고 싶은 곳은 있지만 꼭 가지 않아도 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버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밍숭맹숭한 태도에 방향을 잡아줄 사람 없이 혼자 뛰어든 여행은 무척 서툴고 막연했다. 숙소만 대충 예약해둔 채 계획은 급하게 짰고, 그마저도 허술해서 출국 직전에 놓친 이모저모에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 채였다. 혼자 하는 여행에 얼마나 성실할 수 있을지, 낯선 타지에서 나는 과연 괜찮을지 의문을 품으면서 무작정 밴쿠버로 향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밴쿠버에서의 일주일은 조금 외롭고 조용했던, 그림자 같은 방문이었다고 하겠다. 지극히 나다웠다고 하겠고, 우습고, 소중했다고 하겠다.


말 없이 움직이는 것

  여행 중에 조금 놀랐던 것은 스스로가 생각보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일어난 첫 날 한 첫 번째 일은 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간 것이었고, 마켓에 간 날은 해변가의 일몰을 보러 30분 남짓을 묵묵히 걸었다. 사진에서부터 장관이었던 풍경을 보겠다고 네 시간 동안 등산을 하기도 했다.

여행 첫 날 함께 했던 자전거. 스탠리 파크와 밴쿠버 항 주변을 따라 달렸다.
조프리 레이크를 보기 위한 두 시간 남짓의 등산. 완만하고 가파르기를 반복하는 길을 무작정 걸었더랬다.

  이 모든 움직임들 - 하루에 만 보는 훌쩍 넘게 걸은 날들이 신기하리만치 고요하게 기억된다. 아마 실제로 몇 마디 말을 안 해서일 거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다 보면, 바람이 스치는 게 짙게 느껴지고 운동화가 더러워지는 과정이 자세히 보인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가도 그걸 인지하는 순간 복잡해지고 마음이 텅 비었다가도 온갖 모양의 감정으로 뒤섞인다.
  오랜 기간 외국에 나가는 것을 배웅해준 이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쏟고 오라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애드먼튼에서 만난 룸메이트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찢길 정도로 힘을 써야 하는 것처럼, 마음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움직이던 밴쿠버의 일주일대로라면, 그것만큼은 잘 하고 돌아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푹 빠져서 허우적댄다. 


주변인의 시선

  그리고 이 여행에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있고, 동행하는 사람이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징징댄 것 외에는 일주일 동안 한 모든 말들을 합쳐도 30분이 안 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언어는 생각보다 큰 소외를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로가 정말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 정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림자 정도, 라는 자각은 나를 외곽으로 밀어냈다. 강압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은, 마치 당연하게 구석에 자리잡는 심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주변인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주변인의 시선은 풍경을 바라보기에는 꽤 적절하고, 풍경은 더없이 조용하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멀거니 앞을 바라보았다. 저 풍경에 뛰어들기가 어려워서 선뜻 자전거를 빌리러 일어나지 못했다.
개스타운 거리의 우체통들.
캐나다 플레이스, 밴쿠버 항 부근의 새들.
키칠라노 해변, 갈매기.


관성

  그리고 주변에서 머뭇대던 일주일은, 정해진 수순처럼 다시금 나의 중심을 찾아가게 만든다. 아쉽게도 네 달 남짓을 캐나다에서 지내게 되어 캐리어에 담아 온 흔적 정도로만 중심을 더듬는다. 벌써부터 향수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저 되돌아보는 시간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까지 데려온 것들, 마음들.

키칠라노 해변에서 담쟁이를 곱씹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어린왕자를 생각하게 한 재인과 출국 직전 편지와 함께 책을 건네준 두부, 비슷한 시간대에 적응하던 중인 몽상, 말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오래도록 상대해 준 유월.  


  나의 20대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을 생활, 또 하나의 경험이 될 장이 열릴 이 즈음에, 밴쿠버 이곳저곳을 철저히 그림자로, 주변인으로 거닐었다. 막연하게나마 완전히 스스로를 중심으로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여행 중 어느 순간도 중심에 속하지 못한 채 풍경 가장자리에 매달렸고, 지구 반대편 내가 두고 온 것들을 자꾸만 떠올렸다.
  그게 조금은 외로웠다. 나아가 더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감상에 빠지는 것 같아 또 우스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눈 안쪽이 시릴만치 소중하게 다가왔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지에서 쓰는 첫 글로 담는다. 꽤 괜찮은 그림자 여행이었다.



8월의 마지막 
여름이 진작 끝난 애드먼튼의 기숙사에서
서룩 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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