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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Aug 18. 2023

엄마, 아빠 이혼해서 미안해요

그 때 이렇게 곪아터질 마음이었으면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고 진작 말하지

엄마, 아빠. 이혼해서 미안해. 

동생아, 미안하다. 


나도 정말 잘해보고 싶었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어린 나이에 대학 졸업하자마자 한 결혼이었고, 

앞길이 창창한 나여서 엄마 아빠한테 효도했어야 했는데. 


그 때 내가 너무 힘들고, 

그런 상황의 구원자같이 보였던 전남편을 따라서 

막연하게 답답한 상황에서 도망쳤던 것 같아.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 걱정 잔뜩 안고 갔던 결혼이니까, 

정말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그게 잘 안됐어. 

버틸만큼 버티다가 3년이 지나고서야 말을 했는데, 

그 때 이렇게 곪아터질 마음이었으면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고 진작 말하지..

했던 엄마 말이 잊혀지지가 않아. 


정말 미안했어. 

엄마 아빠가 무엇보다 바랐던 건, 

행복한 나의 모습이었을텐데. 

참고 참다 못해 문드러진 속마음을 겨우 보여주고 

펑펑 우는 나를 보며 엄마 맘은 얼마나 아팠을까. 



늘 우리집의 자랑이었던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로 인해 뭔가 말하기 어려운

조심스러운 존재가 된 거 나도 알아. 


다만 9년의 세월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삶이, 

이제 이 상처도 덤덤하게 말할 수 있고

거기에 좌지우지하지 않게 만들어줘서.. 너무 다행이잖아?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너무 힘들었잖아?



이혼 직후, 

내가 신혼집 짐을 전부 싸들고 

엄마 아빠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 때 정말 몸도 마음도 불편했지?

몸은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난 집 때문에 불편했고, 

마음은 슬프로 미안하고 당황스럽고 방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느라, 

사랑하는 딸이 속상해하는걸 보느라 불편했을거야. 



나는 사실,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서, 

이혼을 하면 정말 행복할 줄만 알았거든. 

그런데 그 이후의 현실이 녹록치 않은 데다가 

가족들한테 피해를 준다는 죄책감, 

그리고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니까 건드리지마라는 예민함이 

극에 달해서 

그렇게 좋은 딸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 때는. 


그 때는 그런데 어떻게 사과를 해야할 줄도 몰랐어. 

그냥 까칠하게, 삐딱하게. 

나 건드리지마, 내 맘대로 살거야 라는 

십대 사춘기같은 마음으로 

나만의 세계로 침잠했던 것 같아. 



지금, 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진심으로 사과할께. 

정말 미안해. 미안했어. 


내가 행복한 모습을 좀 더 빨리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게 내 선택에 제대로 책임지는 행동인건데, 

그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아. 


그러는 동안 옆에서 같이 힘들었을 

엄마, 아빠, 그리고 내 동생.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께.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이제 훨훨. 행복하게. 


행복. 그게 애초에 결혼이든 이혼이든 선택한 이유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 가족의 행복에 내가 플러스하는 사람이 될께. 


진심으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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