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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Aug 25. 2023

이혼녀가 결혼식에 가는 마음

나는 이혼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계속 결혼을 한다 

이혼을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문득문득 이혼의 현실을 깨닫곤 한다. 


나는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3년 정도만에 이혼을 했으므로, 

이혼했을 때 나이가 28이었는데, 

너무 일직 결혼해서인지 

그 때만 해도 주변에 결혼하는 일도 별로 없었고 

결혼식을 참여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스물 아홉이 넘어가고, 

서른이 넘어가면서 

점점 지인들의 결혼식이 많아졌는데 

그 때마다 진심으로 가서 축하해줬지만, 

뭔가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편했다기보다는 

뭔가 편하지 않았다. 



일단 나를 초대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를 결혼식에 초대할 소중한 손님으로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혼하고 얼마 안돼서 결혼식에 갈 땐, 

정말 결혼에 회의적이었다. 


저들은 잘 살겠지?
저들은 잘 살기를. 
제발 연애 때의 그 사랑과 신뢰가 깨지지 않고 유지되기를. 


이렇게 바라면서도, 

왠지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되었다. 

나는 남들은 다 너무 행복해하고 좋아라만 하는 

그 결혼식 현장에서 

마치 불운의 상징이 된 것 같았거든. 


내가 참석해도 될까?

당연하게 초대 받을 자리에 

내가 정말 가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피해의식에 쩔어 있었거든.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닌데도,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나는 혹시나 뭐 작은 거 하나라도 실수할까봐 

행동거지를 조심, 또 조심했었다. 


내가 물을 흘리든가 하는 작은 실수만 하더라도 

그게 이 세상 가장 행복한 당사자들한테 

큰 결례를 범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자기 검열을 하고 또 했다. 



오버한 거 맞다. 

하지만 결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이혼 이후 완전 달라져버렸다. 


이제는 신부의 예쁜 드레스나 

결혼식장의 화려함보다는 

그 둘이 얼마나 사랑할까, 

얼마나 결혼에 준비가 됐을까가 더 궁금하고. 


진심으로 저 둘의 행복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어떨 때는 그 걱정의 정도가 

친정 엄마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결혼은 너무 현실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버려서, 

마냥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동화속 엔딩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동화는 절대 공주님과 왕자님이 결혼한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그 '행복하게'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서로 지지고 볶고 싸워도 보고, 엄청 웃어도 보고, 

많은 일을 함께 해보고, 포기도 하고, 

같이 살면서 소소하고 구체적인 집안일과 

생활 습관을 다 보기도 해 보고,

무엇보다. 내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건데. 

누구도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경우는 없었거든. 



결혼식에 갈 때마다 불편하던 내 마음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았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이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하는데 달려있더라. 


내가 나의 이혼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혼녀이든 아니든, 나는 나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이혼녀로 보지 않는다는 것. 

나를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본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시작에 누구보다 나의 축복을 바라고, 

나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것. 


그걸 진심으로 믿기로, 

믿어보기로 결정하는 나의 마음에 있었다. 

나는 그걸 약 9년이 지나서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후회한다. 

너무 늦게 알아서. 


그러니 내가 장담한다. 괜찮으니까.

당신이 자신을 믿기로, 바로 지금, 

그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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