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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Sep 01. 2023

이혼 후 친구를 끊었습니다

자발적 외톨이, 이혼 이후의 삶 

이혼은 행복을 위해서 한 선택이 맞았다. 

그런데 그걸 오픈하는 건 또다른 문제였다. 


나는 일단, 내가 실패자라고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소위 잘나가는 명문대생이자, 

10년도 더 전에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간 

명문대생 중에서는 센세이셔널한 선택을 했던 나는,

(25살, 만 23살에 시집갔었으니까)


대학 시절 동안에는 

공부 열심히 하고 여러가지 활동도 열심히 하던 

방송기자나 아나운서를 꿈꾸던 야망녀였으나, 

쌩뚱맞게도 첫 연애 상대와 

바로 결혼을 하면서 

좁디 좁은 학과 커뮤니티 안에서 

잠깐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인물이었다. 


당시 동기들 선배들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하거나, 

자신의 커리어 준비에 한창 바쁠 때였으므로. 

나의 이런 독특한 선택은 화제의 중심이 될만했다. 



그런 결혼이었는데, 

생각처럼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사실 나의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졌다. 


결혼하고 나서 대기업에 취직하면서 

사실 몸이 엄청 바빠지고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회사 생활에, 결혼 상활의 고충까지 

나눌 만한 힘도 없었고 그걸 나눌 대상도 많지 않았다. 

힘들다는 얘기가 하기 어려웠고, 

그냥 혼자서 그걸 감추기로 선택했다. 


행복한 척 해야하는 건 못하겠고, 

그래서 사람들을 점점 안만나기 시작했다. 

나의 인간관계는,

사실 그 때부터 정리가 점점 됐었던 게 맞다. 


서로 자기 삶을 살기 바빴으므로, 

나라는 아이는 점점 커뮤니티 안에서 잊어져갔고, 

그럴 수 있었고, 또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인간관계에서의 고립은 

이혼을 기점으로 정점을 찍게 됐다. 


사실, 말을 못하겠었다. 

나 이혼했다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고, 

결혼 생활도 너무 힘들었고,

오래 고민했고, 사실 그 과정도 너무 힘들었다고. 


이혼 얘기를 처음 꺼내고 

과정이 전부 다 마무리 되기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은 

이혼을 고민하던 그 때보다 더 지난했고, 

사실 그 전에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나 혼자 속앓이한 게 1년도 더 된 일이라고..

그 말을 솔직하게. 참 못하겠더라.


나는 실패자고, 이렇게 실패자인데 

그런데도 네가 나의 친구가 돼 줄 수 있겠니?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고, 

사람들이 왠지 이혼녀라고 손가락질 하며 떠날 것 같았고,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면, 
내가 서있는 땅바닥이 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냥 암흑의 세계가 바로 펼쳐질 것처럼. 

나는 왠지 무서웠고, 두려웠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친했던 

대학 동기 한 명만 남겨두고, 

모두 연락을 끊었다. 


번호를 바꿨고, 

새로운 삶에 집중해보려고 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려고 했고, 

이전의 관계가 많이 아쉬웠지만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9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 땐 내가 참 미숙했고, 어리석었던 것 같다.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떨어져나갈 인연이었으면, 

어차피 어떤 이유가 됐든 떨어져나갔을 거고.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니었는데. 

마치 죄인처럼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했다.


정서가 엄청 불안정할 때 맺었던 

새로운 인연들도 어차피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늘 한겹을 숨기고, 그 한 겹이 밝혀질까봐

전전긍긍 떨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은 내 전남편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꽁꽁 숨어버린 건. 

아무리 이혼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미숙한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대학 동기와 연결이 닿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이 이유가 아니었어도, 

서로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서로 사는 삶이 바쁘면 

끊어졌을 수 있는 인연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미숙하게 

도망치듯이 연락을 끊어버리고, 

"나 이혼했어"라는 그 말을, 

마치 사회적 삶의 사형 선고처럼 받아들이고 

못뱉었던 나의 태도는. 깊이 반성한다.


소중한 인연이었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 자신을 자발적으로 고립시킨 거니까. 



그래서 외로웠다. 

뭔가 그 모든 것을 20대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내 삶이 

서럽기도 했었다. 


나는 참 미련했었던 것 같다. 
그걸 왜 그렇게 혼자 버티고 견디고, 참아내려고만 했었는지. 
같이 나누고, 싸우고, 털어내도 됐을텐데.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사람들은 

내가 혼자서 괴롭길 절대 원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덜어주고 빨리 행복하길 바라지. 


그걸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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