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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Sep 01. 2017

일기40_두번째를 위해 건배

나를 닮은 것들의 위로





지난 5월, 생전 처음 가보는 일본 여행에 수도 도쿄가 아닌 고즈넉한 교토를 선택한 나는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도 수도 리스본보다 포르투에 끌렸다. 교토와 포르투의 공통점은 옛 수도이자 현재는 제2의 도시라는 것. 최근에 들어서야 온전히 포르투갈만을 단독 행선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은 스페인을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 곳이고 그나마도 그 중 대부분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노란트램을 보기 위해 수도인 리스본으로 간다.


길게 보면 열흘, 짧게 보아도 꼬박 이레라는 시간 동안 나는 포르투만을 여행하기로 했다. 지루해지면 인근 도시로의 당일치기 생각도 있지만 그건 가봐야 아는 일. 포르투 하나만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대책 없이 빠져들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영광스러운 첫 번째보다 여유로운 두 번째가 좋은 나는 스스로도 늘 두 번째였다. 위로 오빠를 하나 둔 둘째로 태어나 한 번도 오빠의 성적을 넘어서 본 적이 없는 나. 아버지가 온갖 보상으로 현혹하실 때에도 뚝심 있게 성적을 유지했다. 나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지는 첫째의 책임감을 가뿐하게 무시할 뻔뻔함이 있었다.


만약에 내가 공부를 잘했다면 미술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어떤 것에도 탈진할 정도로 열심을 내는 성격이 못 되는 나는 어쩌면 더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척을 통틀어 유일하게 이 쪽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넘어서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혼자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중학교 입학식을 되짚어본다. 당시 우리동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하나씩 뿐이었어서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교복만 챙겨 입고 입학식에서 다시 만나는 꼴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마지막으로 본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남학생(이미 수재로 알려진 익숙한 얼굴)이 조례대에 올라가 선서를 하는 동안 운동장을 가득 메운 무늬만 중학생인 초등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자란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조금은 서운함을 담아 얘기하셨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 전해 들으시길, 내가 아깝게 2등을 하여 입학생 대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전교 순위를 다투는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당신께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을 텐데도 어머니는 내심 나의 2등이 서운하셨나 보다. 한편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대표하는 것은 나에게 부담감을 넘어 불행이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상황을 가까스로 스쳐지나 나의 그림자 인생이 무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라 서러웠던 기억이 왜 없을까.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이 어머니를 'OO(오빠 이름)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그렇게 서운했다. 엄마는 왜 매번 오빠 엄마만 하고 내 엄마는 안 하냐며 울어재낀 적도 있다. 오빠가 첫째여서 그렇단다. 이번 생에는 '내 엄마'가 될 가망성이 없어 보여서인지 더 서럽게 울었다. 그래서인지 언니 없는 친구들끼리 모여 '언니가 갖고 싶다'는 주제로 나누는 대화에 나는 늘 당당하게 '혼자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이번 여행은, 나를 닮은 것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 안에서 위로받기 위해. '첫 번째가 아니라도 괜찮아. 그래도 충분히 사랑스러워.'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결국은 그 말을 듣고 싶어서. 다시 또 철저히 나를 위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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