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법
여행을 결정하고 계획할 때 나름의 방법이 있다. 마음먹고 세운 기준이 아니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보이는 패턴에 가깝다.
굳이 휴가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불쑥 들어오는 장소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곳인지, 그래서 관광이 잘 발달되어 있는지 또는 너무 뻔하지는 않은지 틈날 때마다 알아보게 된다. 스페인 옆에 붙어있는 포르투갈이란 나라는 비슷한 듯 생소했다. 해리포터나 노란트램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찍어 올린 포르투라는 도시의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수도인 리스본에 뒤지지 않는, 어딘지 모르게 당당한 아름다움이 스며있는 사진. 이제 보니 가이아 쪽에서 히베이라를 바라보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에 담고 기다리다 휴가를 낼 수 있는 시기와 만나면 최대한 피곤하지 않은 비행기표를 구매한다. 비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이 중요하다. 새벽에 떠나거나, 밤늦게 도착하거나, 경유하거나, 서비스가 안 좋기로 소문난 항공사를 제외하며 내 마음이 그런 것들로 불편해지지 않도록 가능한 한 배려한다. 안타깝게도 포르투는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뿐이었고 경유를 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대신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 도보 3분 거리의 호텔을 예약하고 경유시간도 (조금 비싸지지만) 가장 적당하다는 2시간을 선택했다. 프랑크프루트 공항에서의 2시간은 조급 급박한 느낌이 있었다. 연결되는 게이트가 멀기도 하고 중간에 소지품 스캔을 한번 더 하는 데다 요즘 비행기 운행량이 많은 시즌인지 활주로 사용 허가가 늦게 떨어져 매번 20~30분 연착했다. 실제로 비행기를 놓칠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초조해지는 시간이었고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여행을 기다리며 나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거나 그 나라에 대한 여행 수필 또는 기타 감성을 자극하는 산문집을 읽는다. 관광 책에서의 가장 유명한 곳, 가기 쉬운 곳을 눈에 담기 전에 가기가 좀 번거롭더라도 내 마음이 가고 싶다 선택하는 곳들을 찾아 우선적으로 시간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나에게 너무 유명한 관광지는 남는 시간에 가거나 안 가도 그만인 곳이다. 이번 여행에는 포르투갈을 사랑해서 구석구석을 여행한 김창열 작가의 '다시, 포르투갈'과 여행 감성을 자극시켜준 장석주 시인의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의 도움을 받았다. 후자는 여행에 함께하기도 했고 목적 없는 순간들에 펼쳐 들면 늘어졌던 시간이 단단히 조여드는 것 같아서 참 감사한 책이다. 날짜가 가까워오면 가이드북도 읽기는 한다. 기초적인 루트를 짜거나 근교 도시로의 여행에 '포르투갈 홀리데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가격이나 정확하지 못한 디테일이 없지 않아 있으니 필요시 인터넷으로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고 가게나 관광지의 오픈 시간은 구글맵이 더 정확하니 걱정할 것은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 먼저 표시해두면 하루의 루트를 짜는데 적잖이 유용하다.
가기 전 완벽하게 확정 짓는 요소들은 비행기표, 숙소, 현지 SIM 카드와 여행자 보험 정도이다. 나머지는 현지에 가서 당시의 상황에 맞춘다. 그 날 가려고 했던 곳이 맑은 날 예쁜 곳인데 날이 흐리면 다른 일정으로 바꾼다던지, 근교에 가려고 마음먹은 날 생각보다 너무 피곤하면 인근에서 하루를 보내던지 하는 방법이다.
일주일 정도 여행할 때, 도시 간의 이동은 최대한 자제한다. 나에게 일주일은 한 도시를 여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꼭 가보려 했는데 문을 닫았거나 너무 붐벼서 다른 날 다시 와야 하는 곳도 있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보는 것이 확연히 다르기도 한 데다 좋았던 가게를 재차 방문하기에도 넉넉하고 급하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지 않고 하루 종일 걸어서 다니기에도 좋은시간이다. (나는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 기대하지 않은 골목에서 좋은 피사체들을 찾곤해서 걷는것을 선호한다.) 지도가 없어도 숙소 근처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숙소에서의 아침과 밤을 여러 번 눈에 담기에도 충분한 시간. 스물네 살의 로마와 파리, 스물여섯 바르셀로나 그리고 최근 교토에서처럼 일주일 가량 한 도시에 머물렀던 여행들이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아쉬우니 다음에 또 와야지' 하는 마음이 남지 않도록, 이미 여기에 서 있는 지금에 충실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내 기준에서는 일주일 정도인 것 같다.
물론 아무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나는 유난히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으로부터 온전한 휴식을 얻는다. 이때 하는 생각과 눈에 담는 풍경은 다른 누군가와 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나 외의 누군가는 나에게 있어 늘 불편함은 없는지 챙겨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내 여행을 하는 시간을 뺏기는 기분이었다. 가려고 했던 곳이 문을 닫았을 때도, 어떤 실수를 했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혼자일 때는 웃어넘길 일인데도 말이다. 힘이 들어도 쉬어가지 못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것은 나에게 고역스러운 일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그저 나만 배려하면 된다. 쓸데없이 다른 길로 가보고 싶거나 일찍 눈이 떠져서 하루의 계획이 변경되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렸을 때 혼자 했던 여행은 피곤했다. 계획대로 움직이려고 했고 예상치 못한 지출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안전하게 일정을 끝내는 것이 숙제같이 느껴져서 눈 앞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변수들에 관대해지면서 여행지에서의 시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요즘은 정말 좋은 여행의 순간에 마치 눈물이 날 것처럼 코끝이 찡해진다.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과 이런 감정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마음이 감당할 수 없게 벅차올라서일까. 아니면 그저 나이라는 것을 먹고 주책 맞아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