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o2_벽을 허무는 마법

그들이 내어준 마음의 조각들

by 일랑




자랑이 아님은 잘 알지만 나는 평소에도 철벽 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일단은 경계하는 편이고 위험요소에 예민하다. 귀신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사람은 무서워하는, 어쩌면 어느 정도 성악론자일 수도 있겠다. 한번 허물어진 벽 너머로는 끝도 없이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벽을 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뢰의 시간이 필요한지 내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잘 안다.


혼자서 자주 여행하는 나에게 이런 경계심은 양날의 검이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여행지에서 다가오는 호의 또한 단박에 의심하고 거절하는 이유가 되었다.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 사이 나 스스로가 나이를 먹어 조금 유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의 호의는 유난히 거절할 수가 없다. 미세한 톤의 차이, 아니면 순한 눈매, 그것도 아니면 약간은 수줍은 미소 때문일까. 그들은 천성이 착한 것인가 보다 하고 머리보다 마음이 결론지어버렸다. 문화와 역사가 해리포터의 영감이 되어 많은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찾는다지만 정작 나에게는 일순간 단단한 벽을 허물고 들어오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더 마법사 같았다.


북미, 그리고 유럽에서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나는 혼자 여행을 하며 좋지 않은 경험이 여럿 있었다. 굳이 집어 어느 나라인지는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유 없는 무시나 무례라던지 길가는 청소년들의 밑도 끝도 없는 비웃음 또는 비아냥을 마주할 때마다 불쾌감과 위협받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슬프게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나는 알아듣기 때문에 더 기분이 상한다.) 한국도 외국인을 향한 무례함에 있어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으니 여러모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에 반해 포르투갈은 놀라울 정도로 상냥한 나라였다. 자신의 나라에서 영어를 쓰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다른 비영어권 유럽 나라들과 달리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신의 유창하지 못한 영어에 늘 양해를 구했다. (그럴 일도 아닌 것이, 그들은 유럽인중에 영어를 꽤나 잘하는 편이다.) 과거 안좋았던 기억에 십 대 남자아이들 무리가 지나갈 때마다 긴장했던 몸이 몇 번의 마주침과 짧은 눈인사에 풀어져버린다. 지나가기 쉽게 비켜주고 먼저 탈 수 있게 물러나 주는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계산 없는 행동들이 기복 있는 친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경계심으로 쌓아 올렸던 벽이 단박에 무너졌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그들의 호의에 더 감사하고 그들의 농담에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매 순간이 즐거웠던 여행. 내미는 손길조차 투박하지 않고 다정해서 나 또한 상냥하게 돌려주고 싶었던 순간들. 나도 당신만큼이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으로 전염되는 곳. 치명적이었다.





Foz 해변을 유난히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넘어오는 파도를 피해 방파제를 걷는 나에게 이끼가 끼어 미끄럽다며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지나가던 '피오' 덕분일 것이다. 근처에 살지만 Foz를 좋아해 가끔 이렇게 산책을 나온다는 그와 함께 돌아오늘 길을 걸으며 그가 사랑한 Foz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내 시간을 뺏는 것 아니냐며 조심스러워하던 친절에, 혼자 걸어오는 동안 본 것들과는 다른 풍경이 보였다.


코임브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포르투로 돌아오며, 더 오래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쉽다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산타 클라라 수도원 마당에 서서 함께 코임브라 시내를 내려다본 '요한' 때문이지 않을까. 수도원이 너무 마음에 들어 구석구석을 보느라 예상보다 오래 머물던 내가 눈에 밟힌 건지, 어느덧 다가와 코임브라의 주요 건물들 위치를 짚어주며 좋은 여행을 하기를 빌어주던 그의 옆에서 짧지만 자상한 시간이 흘렀다.


여행의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기 전 꼭 이 곳에 들려 아침을 먹겠다고 마음먹은 카페 카운터에는 '데니스'가 있었다.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인테리어에 반해 여러 번 오간 카페 프로그레소에서 안면이 있었던 그는 이제 돌아간다는 나에게 다음번에는 리스본에도 꼭 가보라며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발음이 어려운 내 한국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알려주자, 구태여 한국 이름을 시도해보겠다며 몇 번을 발음해보던 그. 만약 정말 리스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분명 '데니스'를 떠올릴 것이다.


'피오'가 좋아한다던 포즈해변의 풍경
'피오'와 함께 걸었던 길



'요한'을 만난 맑은날의 산타 클라라 수도원
'요한'과 내려다 본 코임브라 전경



가장 좋아했던 카페 프로그레소
'데니스'가 일하는 카페 바 카운터




20유로 지폐를 5유로로 착각한 나에게 거스름돈을 전해주기 위해 달려 나오는 웨이터며, 차 시간으로 곤란해하는 나를 위해 관람시간을 조정해주는 전시관의 스태프, 내가 흘리고 다니는 수많은 것들을 챙겨주러 나온 가게 점원들과 가방이 열린 채로 다녀 염려된다며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다) 조용하게 속삭여주는 길거리 사람들. 눈 마주치면 가벼운 미소와 인사를, 도움이 필요할 때는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늘 달려올 준비가 되어있는 그들에게 나는 여행 내내 세심하게 돌봄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는 뿌옇게 사라질 테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조금 더 잡고 있어보려 계속해서 떠올려보는 얼굴들.


내가 놓고간 것을 돌려주러 뛰어나온 카페점원
지도에 표시해가며 한시간 넘게 구석구석 설명해주던 필립
리얼 포르투갈 남자의 사진을 찍으라던 재미있는 아저씨
놓고 간 거스름돈을 챙겨주러 뛰어나온 레스토랑 직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들은. 조그만 가방을 하나 매고 자신들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을 이상하리만큼 계속 사진에 담으며 분주하게 시선을 옮기던 왜소한 동양 여자. 삶의 프레임에 어느 날 잠시 들어와 짧은 인사와 악수를 남기고 지나간 얼굴 하나 정도일 테지.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차례로 흐릿해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아마 그들이 낯선 나에게 내어준 마음의 한 조각일 것이다. 경직된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내민 손의 따스함이 그 어떤 기억보다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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