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할수록 사랑스러운 그들의 기준
*지난 편 글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주제에 집중이 안 되는 관계로 두 편으로 분할하여 재구성합니다 :)
이 글을 쓰게 된 데는 한 가지 상황이 있었다. 브라가의 Bom Jesus do Monte(산 위에 계신 좋은 예수님)를 둘러보고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음 깊이 성스러워지는 곳이고 감명 깊은 곳이었지만 산 꼭대기까지 올랐던 만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 버스로 달려드는 인파에 끼어들 힘도 없어서 뒤로 빠져있자 한 할아버지가 먼저 타라며 손짓을 한다. 할아버지 한 명보다 먼저 올라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마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기분이 상할 틈이 없다. 헤실헤실 웃으며 나란히 입구로 걸어가던 중. 버스기사가 갑자기 모두를 멈추게 하고 올라타려는 무리의 뒤를 향해 손짓한다. 시선의 끝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가 서 있다. 사람들 사이에 눌려 아기가 다칠까 뒤로 빠져있었나 보다. 버스기사가 정한 순서에 그 누구 하나 토를 달 수 없다. 내가 먼저 탄 것도 아닌데,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함께 기다란 줄 끄트머리에 서 있는데도 기분이 잔뜩 좋아진다. 땀으로 온몸이 끈적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지언정 마음은 살랑살랑 시원한 거다. 그래, 우리 모두 방금 산 위에 계신 좋은 예수님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지 않나. 그 마음을 이렇게 빨리 내팽개쳐버리면 안 되는 거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당 안, 의자에 앉아서 나는 반쯤 지나간 여행 중 마주친 포르투갈 사람들과의 만남을 되짚어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일관되게 자상할까.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성당이 증명하듯, 신의 가호가 있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좋으신 예수님'이 산 위에서 그들을 굽어살피기 때문인가. 정말 그들의 신이 그들에게 상냥해서 이렇게 상냥한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거라면, 종교가 없는 나일지라도 그들의 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들을 내려주시고 만나게 해주심에, 이렇게 가슴 벅찬 여행에 초대해주심에.
예약해 둔 레스토랑 오픈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리며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나보다 안쪽에 있던 갓난아기를 데리고 온 부부가 떠날 참인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긴다. 공간이 빠듯해서 유모차 빼기가 어려워 보여 내가 힐끔대자 눈치 빠른 아기아빠가 괜찮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 작게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역시 요리조리 유모차를 비틀어보아도 쉽게 빠져나가 지지 않는다. 내가 한번 일어나는 게 대수인가 싶어 의자를 빼고 공간을 만들어주니 쉽게 빠진다. 미안하다며, 고맙다며 연신 눈을 마주치며 나가는 젊은 부부가 작은걸 참 크게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마음을 예쁘게 내어주는 만큼 받기도 참 예쁘게 한다. 그래서인지 여행 내내 나는 문을 잡아주고,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위해 걸음을 멈추어주고, 순서를 양보하고, 자리를 비켜주어 가며 기쁜 마음으로 작은 배려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꾸 나를 물들인다. 마치 나도 좋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데도 자꾸만 속삭인다. 너도 좋은 사람이라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지는 마법. 스스로 벽을 허물고 나와 같은 색깔로 물들여지고 싶은 기분 좋은 변화.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을. 여기에서라면 기꺼이, 내 색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