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o4_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 때

비로소 나는 여행 중임을 깨닫는다

by 일랑





시작부터 꼬이는 느낌이었다. 열 시간 동안 갇혀있어야 하는 비행기 옆자리는 내 공간으로 팔다리가 하나씩 넘어오고도 남을 거구가 앉아 있고 빠듯하게 경유해야 하는 일정인데 비행기에서는 활주로 사용 승인이 늦어져 연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이미 싫어하는 비행이 한결 더 싫어진다. 비행시간이 반으로 단축되는 기술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컵라면을 치우는 승무원은 나에게 국물을 튀게 해서 먹지도 않은 라면 냄새가 온몸에 배기도 했다. 이건 또 얼마나 큰 사건의 복선인 걸까 하는 생각에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하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USIM을 끼우고 경유하는 독일에서 핸드폰을 켰을 때, 사용 24시간 전에 신규 USIM을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하는 절차를 깜빡했음을 알게 되었다. 공항 와이파이를 잡아 바로 신청해 보았지만 4시간 후 포르투에 도착해서 당장 데이터를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밤 12시에 내려 구글 지도를 보며 공항 근처 호텔을 찾아 걸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어떻게 이런 걸 놓칠 수 있지?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중요한 순간 칠칠맞냐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계획과 다른 일들이 생기면 그것은 곧 실수다. 인지하는 순간 스스로의 모자람에 속이 상한다. 여행 초반에도 그렇다. 더 잘할 수 있었던 여지가 보이면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일상에서 배인 몸의 습관은 완벽이 아닌 것을 실수라고 인지한다. 하지만 매번 반복하는 일상이 아닌 이상 새로움의 연속인 여행 중 하루가 어떻게 계획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 그렇게 여행이 이어지면서, 실수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났구나, 하고. 실수가 아니라, 여행의 일부인 거다. 며칠 전의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바로 그 여행.


시간이 맞지 않거나 휴관일이 있을 것을 감안해서 나의 여행 스케줄은 언제나 성글게 짜여있다. 비 오는 날 하루쯤 카페에서 글씨를 쓰거나 햇살 좋은 날 반나절쯤은 공원에서 책을 읽어도 좋을 만큼, 그런 것쯤 두 번은 해도 문제 안될 만큼 말이다. 하지만 늘 변수는 존재하고 준비했던 만큼의 여유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막상 여행 중에는 자꾸만 하나 더 볼까 하는 욕심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날, 길을 잃었다
셋째날 또, 길을 잃었다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걷기도 자주한다
내 눈에는 특별한 포르투의 일반적인 건물



붐빌 것을 예상해서 미리 예약해 둔 곳은 여유로워서 민망할 정도일 때도 있고, 당연히 오늘 첫 손님일 거라며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오픈 전부터 긴 줄이 서 있던 적도 있다. 하루 동안 도대체 몇 번 길을 잃은 건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자주 길을 잃는 날이 있는가 하면 시차가 맞지 않아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바람에 도시가 잠에서 깰 때까지 무료한 아침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으며 핸드폰 충전기를 두고 숙소를 체크아웃하는 흔하디 흔한 여행자의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찍어 올리는 사진만 보면 화려한 휴가를 즐기는 싱글 여성이 상상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은 우왕좌왕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고 들어간 골목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의 뒤태를 찍는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멍하니 앉았던 공원에서 꿈같은 석양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괜히 시간을 비워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 어떤 가이드북도 추천한 적 없고 그 누구도 일부러 가보지 않을 골목을 지난다. 코끝 찡하게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 어느 골목에서 맞닥들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서는 말이다. 언제나 검색하면 나오는 잘 알려진 곳의 사진보다, 나에게만 보이는 그 모습을 담는다.


계획에 없던 흐린날, 하룻동안 무얼할지 고민이 된다
식당 예약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공원에왔다
보려던 성당이 마침 미사중이라 밖으로 나와 멍하니 서있다
새벽4시에 일어나 예상치 못한 이른 하루를 시작한다
오픈 30분 전에와도 내 앞에는 이미 30명쯤 서 있다


여행지에서는,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말 그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뿐인 거다. 그 결과가 더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내포하지 않는다. 그저 특별했던 오늘 하루의 작은 디테일 정도.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변수에 관대해지고 웃을 일이 많아진다. 기분에 취에 쓰지도 않을 기념품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성을 내려놓은 나 자신과 일상에서 자유가 된 이 시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나 답지 않은 일들을 해가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 지금 일상에서 벗어났구나, 여행하는 중이구나. 그렇게 계획이 의미 없는 미지의 순간들이 모두 설렘의 촉매제가 된다.


정말 쓸데없는 득템을 하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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