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都6_사치스러운 시간

게으르게 흐르는

by 일랑




발 닿는 대로 움직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쉬기로 한다. 냉큼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 성에 찰 때까지 늘어져보는 동안 시계는 보지 않기로 한다. 그때부터 시간이 조금씩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질 때 내가 원하는 곳에서 시간을 멈춘다. 눈으로 찍은 사진을 마음결 사이에 꽂아 넣어둔다. 한참을 그렇게 멈춰있다 문득, 이다음에는 어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제야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사치가 아닌가. 정말이지 여행할 때의 나는 시간에 있어서 흥청망청이다. 일할 때는 시간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 이런 극적인 휴식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면세점에서 그간 수고한 나에게 선물하는 것도, 으리으리한 호텔의 룸서비스에도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스스로 사치를 허용해 본다. 최선을 다해 느리게 여행할 것.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 온전히 나에게 선물할 것. 소신 있게 그렇게 할 것.



료칸에서 조식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햇살 구경중
카모강을 건널까 말까 고민중
데마치야나기 델타에서 사람 구경중
윤동주와 정지용 시인의 시비 앞에 앉아 생각중
겐코안, 깨달음의 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
겐코안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중
아라시야마 공원에서 마지막 아침을 맞는 중



여담이지만, 혼자 여행하다 보면 너무 완벽한 순간을 만나 다른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친구 저 친구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닫았다 발이 동동 굴러질 정도로 공유욕이 치솓을때,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내가 느낀 이 감동이 고작 사진 한 장으로 바다 건너 너에게 어떻게 똑같이 와 닿을 수 있을까. 돌아올 답은 '멋지네'로 정해져 있으니 이런 일방적인 감정 공유는 민폐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보기는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완벽한 순간이다 싶을 때, 그럴 때를 위해 SNS가 존재하겠지만은. (덕분에 인친들이 며칠간 이어진 사진 도배로 힘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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