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것에서 만난 사람들
지금껏 유독 일본과 인연이 없었다. 바로 옆 이 나라에 오기까지 정확히 서른세 해나 걸렸으니.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선과 악이 뚜렷한 걸 선호하는 나는 잔잔한 일본 감성과는 맞지 않는다 선을 그어온 덕에 사실 그 전엔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마저도 없었더랬다. 감정선이 요동치던 이십 대를 지나 삼십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조용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곳.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씩 궁금해졌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다 들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역시 남다르다'는 느낌이다. 호텔이며 료칸에서의 친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유난히 인상 깊었던 것은 교통수단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교토에만 있어 봤으니 일본 전역이 그런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마이크를 차고 깨알 같은 멘트를 하는 버스 기사님들의 팬이 되었다. 녹음된 음성이 아닌 육성으로 정류장 이름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하차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내며 인사를 건넨다. (몸이 불편한 노약자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 극진하다) 무엇보다도 정지신호에서 정차 후 다시 출발할 때마다 매번 읊조리는 단어가 "갑니다"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눈이 동그래졌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모든 순간에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친절이 녹아있었다.
한국에서처럼 저 멀리 버스가 보이면 도로까지 뛰쳐나갈 기세로 서두르지 않아도. 정류장에 다와 가면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문 근처에서 하차 준비를 하지 않아도. 일본 기사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매번 기다려 주었다. 덕분에 한 템포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 그럼에도 불편함은 없다. 누구 하나 불평도 없다.
여행지에서는 밤에 잘 안 돌아다니지만 이번 여행에서 딱 한번 약간 늦은 시간에 돌아온 적이 있다. 낮과는 다른 낯선 풍경에 약간은 긴장한 상태였다. 그때 버스가 정차를 위해 속도를 줄였고 버스의 빈 뒷좌석에서부터 빈 물병이 통통 소리를 내며 앞으로 굴러갔다. 몇 차례 앞뒤로 요란하게 왕복하니 그 소리가 점점 신경 쓰일 즈음, 직장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병을 주워 자신의 가방에 넣고 버스에서 내렸다. 밖은 어두웠지만 버스에서 내린 그가 병을 분리수거함에 넣는 모습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나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숙소로 옮기는 발걸음에는 어느새 밤이 주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라시야마의 명물 토롯코 기차를 탔다. 토롯코사가 역에서 카메오카역까지 삼십 분가량 양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만끽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어린 남자아이 둘이 있는 중국인 가족과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발길질과 가족 셀카 타임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나는 한껏 찌그러져야 했다.
그때 승무원 아저씨가 다가와 다급하게 손짓하며 나를 이끌었다. 따라가 보니 내가 타고 있던 일반칸(1 호칸~4 호칸)과는 다른 개방형 5 호칸의 빈자리였다. 그제야 나를 안타깝게 여긴 승무원 아저씨의 배려임을 알고 허리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심지어 예약하기 힘들다는 그 5 호칸. 손에 닿을 것 같은 바깥 풍경과 그대로 껴지는 바람에 한껏 신이 났다. 풍경 또한 실로 절경이었지만 승무원 아저씨의 친절이 더해져 잊지 못할 기억으로 완성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캐리어 때문에 도보 15분 거리임에도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다. 내가 탄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허리 숙여 인사해주시던 호텔의 아주머니와 기본요금 거리임에도 상상 가능한 모든 친절로 나를 대해준 택시 기사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추억이다. 몇 달이라도 일본어를 배워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어눌하게나마 그들의 언어로 표현한 감사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답례가 아니었을까.
어딘가를 여행할 때, 아무리 사람 좋은 동네라 해도 그 과정에서 불친절함을 경험하는 순간이 절대 없을 수는 없더라. 그런데 일본은 그런 내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해 주었다. 순수하게 궁금해진다. 인간의, 그리고 한 집단의 친절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