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 여행에서 돌아가면 받아 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로맨틱하다 생각했다. 다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다지 큰 감동이 아니었을 뿐. 그래서 생각한 게 어렸을 때부터 편지나 선물을 잘 간직하는 오빠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멀리사는 오빠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생존신고이기도 했고, 나와는 달리 자주 여행을 다니지 않는 오빠에게 다른 나라에 대한 감상을 짧게 공유하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거의 10년 가까이 해온 일이니 그간 모인, 이제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지난 엽서들을 보게 된다면 분명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처음에는 엽서를 보내는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내용을 거의 적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다, 여기는 이러이러하다. (현실 남매는 이렇게 세상 무미건조하다) 하지만 따로 사는 오빠에게 뚜렷한 목적 없이 이야기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요즘, 내용이 조금씩 길어진다. 내가 힘들 때는 힘내라, 내가 자신 없을 땐 잘 하고 있다. 마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하듯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오빠, 이 글을 보거든 너무 걱정은 말길. 나는 이렇게 또다시 일어나 걷고 있으니.
료칸을 나서며 이번 여행에 챙겨 온 캘리그래피 펜을 기억해 냈다. 사실은 여행 중 한껏 고조되어 있을 감성으로 캘리그래피 연습을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럴 짬은 나지 않아서 잊고 있던 물건이었다. 오래간만에 잡은 펜이라 엽서 여러 장을 버리고 나서야 겨우 건진 한 장. '감사합니다'와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고작 두 문장을 쓰는 게 어찌나 힘이 들던지. 그래도 손으로 쓴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마음먹고 기념품 쇼핑을 하는 편은 아니다. 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현지에서의 기념품이 얼마나 희소성을 가질까 싶기도 하다. 그런 나도 간혹 구경을 하다가 어떤 얼굴이 떠올라 눈길이 조금 길게 머무는 순간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돌아가서 전해주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도 그냥 사둘까, 못 주게 되면 내가 가지고 있게. 그런 부질없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결국은 눈에만 담기로 하지만 아쉬움에 자꾸만 뒤돌아본다.
너는 알까. 여행 중에 너에게 전하지도 못할 물건 앞에 이리도 오래 서 있었다는 걸. 그냥 돌아서는 마음이 그렇게 허 전하 더라는 걸. 그러니, 그 정도의 마음이니, 너는 받은 셈 쳐 주었으면. 한편으로는 이런 내 무거운 마음을 너는 몰랐으면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아껴뒀다 여행지에서 전해 본다. 단어 하나라도, 우표 하나라도 일상과는 다른 목소리로. "안녕, 나는 잘 지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