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都4_기억하도록

걸음이 닿는 만큼

by 일랑




나는 본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좋고, 고민에 빠져 걷는 것도 좋다. 낯선 도시에서 찾아낸, 마음에 드는 장소를 여러 번 오가다가 어느 순간 지도 없이 다닐 수 있게 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마치 내가 그 도시에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걸어서 눈에 담은 길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살갗에 닿던 따가운 바르셀로나의 햇빛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따라오던 호기심 어린 칭퀘테레에서의 시선, 그리고 조용히 흐르던 강 표면에 부딪혀 산란하던 파리의 빛 한 줄기를 기억한다. 같은 길을 다음날 다시 걸어도 절대 어제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 없었다.




5박 6일의 모든 일정을 주저 없이 교토에 투자하기로 했다. 차고 넘치는 여유를 기대했건만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머무는 동안 장대비 내리는 교토도, 보수 중인 기요미즈데라도 보지 못했다. 그것뿐인가. 안개 낀 아침도, 벚꽃 가득한 거리도, 눈 내린 정원도 보지 못했으니 이곳에 다시 올 이유만 한가득이다. 떠나오기 전 확인한 날씨예보로는 비 오는 날이 이틀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비가 내릴 때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마음에 와 닿는 책의 구절들로 캘리그래피 연습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읽지도 않을 책을 내내 무겁게 들고 다니기만 했다) 물론 여행객으로써 맑은 날씨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꿈꾸던 여행의 한 조각은 놓치고 돌아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구글맵은 나를 매번 이상하고도 사랑스러운 뒷길들로 안내했다. 여행이 끝난 지금 돌아보아도 가장 교토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금각사가 아니라 금각사를 가기 위해 걸었던 산 아랫길이었고 유명한 신사의 정원이 아니라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어떤 이의 앞마당이었다. 이 인공지능의 안목에 감탄을 거듭하며 나는 목적지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리기를 반복했더랬다.


교토에 와서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 짐을 싸 왔다는 것을. 그런 것들이 결코 소소하기만 한 볼거리가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단편이라는 것을. 발견되어 주어서 감사한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이었다.



자세히 보면 내가 있다
숙소 근처 동네를 산책한다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걷는 길
걷다가 마주친 반가운 얼굴
기온 거리를 조금 벗어나본다
아라시야마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철길
아라시야마 주민 '나카타'씨의 정원



다음번에 이곳을 찾을 때는 장대비든 안개든, 예상치 못한 날씨를 만나길 기대해본다. 검색하면 쏟아져 나오는 멋들어진 사진들이 아닌 나만 간직할 수 있는 장면으로 그 동네의 온도를, 그리고 냄새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그때도 나는 한 정거장 먼저 내려걸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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