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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Nov 30. 2017

일기51_과거의 일기





이 일기를 언제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미래의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현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교육 중에 모르는 번호로 두 번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더니 메일로 A사의 면접 결과가 왔다. 이미 알고는 있었다. 공식적인 결과만 늦게 전달되었을 뿐. 그러니 오늘은 공식적으로 연봉 협상이 시작된 날이다. 어제 B사와의 면접도 그럭저럭 잘 끝난 편이다. 결과는 긍정적일 것 같지만 그쪽 팀 내 분위기가 냉랭했던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아와 팀원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며 웃고 나니 심란했던 마음이 안정을 찾은 느낌이다. 지금의 팀원들과는 목젖이 보이게 웃는 것이 일상이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집에 돌아와 늦게까지 TV에서 하는 영화를 봤다. 한 젊은 여자 PD가 망해가는 프로를 살려내고 잘 나가는 타사 프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버리지 않고 돌아와 남기로 결정한다. 그녀가 그곳에서 그녀만의 행복을 만들어 갈 것을 암시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났다.


내용에 조금 울컥했다.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내가 지금의 조직을 떠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남아 있기 위한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된다. 나가려 애쓰는 것인지 남아 있기 위해 애쓰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지금의 동료들을 좋아한다. 내 마음이 바닥을 칠 때 때 쉬어갈 자리를 내주었던 곳이다. 하지만 너덜했던 마음이 수습되고 나니 이제 그만 일어서야 했다. 다시 나 자신을 위해 걸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직을 생각하게 됐다.





그럼에도... 지금의 자리를 비울 생각을 하면 심장이 지표면 아래로 끌려내려 가는 느낌이다. 어떻게 떠난다는 사실을 전할까.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서 마지막 날을 맞을까. 새로운 곳에서 편안해지려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이렇게 힘이 든데 지금 이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한발 물러나 사무실에서의 내 자리를 눈에 담아본다. 나는 여기에서 정말 많이 웃었다.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할 정도로 웃었더랬다.


이 일기를 올렸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렸다는 뜻 이리라. 그 미래의 나에게 당부하고 싶다. 후회나 미련은 남기지 말라고. 어느 쪽으로 가든,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라고.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제안받은 그곳으로 결국 가지 않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지금 맡은 이 일에서 변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있어서도 아니고 가족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버리지 못해서도 아니라 그저 인생이 이 방향으로 흘러왔고 나는 흐름에 이끌려 지금 여기에 있다. 시간이 다시 한참 지난 후에 돌아보면 '그런 일도 있었지' 할 법한 그날의 기분을 기록해 놓은 것은 잘 한 일이다. 나는 지금도 괜찮고, 많이 웃는다. 그것으로 된 일, 참 다행스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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