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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Nov 24. 2017

일기50_이사





간밤에 눈이 내렸다. 며칠 전 사무실에 앉아 창 밖으로 본 첫눈은 쌓인 것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무효로 하고 이것이 나에게는 올해 첫눈이다. 집을 나서니 지면에 닿지 않는 모든 표면에 눈꽃이 피어있다. 경비원 아저씨들의 비질 소리가 왠지 낭만적으로 들리는 아침, 쌀쌀할 거라 예상했던 날씨는 상쾌함 정도라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금요일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듯하고.


오늘은 사무실 이전으로 짐을 싸는 날. 이미 며칠째 먼지 구덩이에서 생활중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의외로 잦은 이동을 겪는다. 분기에 한 번쯤 이동을 예상하고 살림을 너무 늘리지 않는 것이 팁이라면 팁일까. 어느덧 짐을 싸는데 도가 튼 직장인이 되었다. 비단 회사의 이사뿐이랴. 태어나 지금까지 열 번 넘는 이사를 했다. 작게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와 경기도로, 크게는 3개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중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사도, 혼자 하는 이사도, 옆 건물로 한 이사도, 해외 이민도 있었다. 자주 하는 이사인데도 할 때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사실은, 가끔 한 번씩 이렇게 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싸 놓고 새로운 곳에 재배치하는 것을 남몰래 즐기는 나다. 마치 여기 있었던 적도 없었다는 듯,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다. 여기서 한 실수는 다시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책상의 먼지까지 닦아내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날 마음이 생긴다. 내 삶은 그렇게 정리하고 떠나기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3년 가까이 매일 다닌 길로 사무실에 가는 중이지만 오늘은 조금 낯설고 설레는 기분이다. 마지막이 될 이 길을 정리하듯 걷는다. 이제 막 시작된 겨울 동안 이 길 위 모든 것들이 길고 좋은 꿈을 꾸기를. 그래서 봄이 깨어날 쯤에는 웃을 일들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힘주어 걷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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