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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Nov 06. 2017

일기47_돌이켜보면 나는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을 시작할 당시 나는 신입답지 않은 신입이었다. 이전에 짧게나마 5개월씩 두 군데의 작은 회사를 거치며 좋은 경험보다는 황당하고 무서운 경험들을 잔뜩 하고 나서는 도망치듯 유학을 다녀왔던 당시,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높이 벽을 쌓은 채 사회에 나왔더랬다. 덕분에 보통 신입들보다 나이는 많았고 어떤 면에서는 노련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불편한 조직원이었다.


나는 많이 혼나지 않은 신입이었고, 그래서인지 혼내지 못하는 선배가 되었다. (아니면 아직 혼내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신참 선배일 수도) 늘 위를 향해 비판하던 내 시선이 후배가 생기면서 아래로도 향하는 것을 느끼며 새삼 지난 선배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아무리 나이 많고 경험 많아도 신입은 신입인 것을, 제 잘난 맛에 고개 빳빳이 들고 후배 역할은 뒷전이었던 나. 할 말 다 하고, 싫은 티도 숨기지 못했으며 떨어지는 모든 일에 논리를 요구했다. 물론 후배라 하여 아무 생각도 없이 시키는 것이라면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일이 논리 정연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도 될법한 일들까지 설명하는 부담을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알려주고 또 어디부터 감당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은 일이다.





17년은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삼십 대 중반의 대열에 서는 나는 과연 올해 어떤 성장을 했나 하고 돌아본다. 어렸을 때는 서른이 넘으면 적어도 인생의 8할은 완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그 자리에는 여전히 제 앞가림하기에도 벅차 하는 어리숙한 미완성체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판단하길 두려워하고 후회할 짓도 많이 하며 반복적인 실수를 한다.


세 번의 여행, 두 가지 언어와 씨름하는 새 유난히도 빨리 지나간 올해를 이제는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또 내년은 어떤 것들로 채워야 나이에 맞는 인간으로 성숙해져 나갈 수 있을까. 최근 만난 네 살 터울의 전 회사 선배가 말하길,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주저했던 내 나이를 지금 돌이켜보니 충분히 다 해볼 수 있는 나이였단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주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무 먼 계획을 세우지도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그리고 마음 가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역시 또 뻔한 결론에 오늘도 힘들게 도달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다그치지는 않으련다. 가을이 가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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