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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Feb 09. 2018

일기59_빨간 구두 아가씨





"아가씨 때 빨간 구두 하나쯤은 있어야지."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쩍 패션에 관심이 많아진 내게 50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핑크빛 빨강도, 진한 와인빛 빨강도 아닌 새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는 날이면 어머니는 유난히 흡족해하셨다. 7센티 정도의, 과하지 않게 높은 그 힐을 신고 나는 운동화를 신은냥 잘도 뛰어다녔다.


과거의 그 구두가 닳고 가죽 여기저기가 벗겨지자 나는 비슷한 것으로 한 켤레 더 사 신었다. 아직은 아가씨였고, 아가씨에게 빨간 구두 한 켤레는 늘 있어야 했으니까. 다소 튈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신발을 나는 평소뿐만 아니라 면접 같은 중요한 자리에 특히 더 챙겨 신었다. 한 번은 내 무릎만큼 올라오는 작은 키의 여자아기가 엄마를 따라 만원 엘리베이터에 탔다. 좁은 공간에 갇힌 아이의 낮은 시야에 내 구두가 들어왔던지 손으로 가리키며 천진한 웃음소리를 내자 그 귀여운 모습에 엘리베이터 사람들이 모두 같이 웃었다. 구두는 그렇게 그 날 대화의 시작이 되거나 개성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게 해주었다.


그것이 취향으로 발전해 이제 나는 샛노란 구두도, 새파란 구두도, 반짝거리는 은색 구두도 가지고 있지만 그중 어떤 것도 빨간 구두만큼의 존재감은 없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하지만 타인에게는 조금 특별한 반짝이는 빨간 구두는 내 아가씨 시절을 대변하며 오늘도 신발장 안에서 나와의 특별한 외출을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봄을 손꼽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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