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기엔 아쉬운
여행 중에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은 피사체와 감동을 만난다. 하지만 숨은 보물을 찾겠다고 다짜고짜 모르는 동네를 뒤질 수 없으니 일단은 명소들을 위주로 동선을 짠다. 다만 가고자 하는 명소들의 수와 거기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을 뿐.
덕분에 이번에도 교토의 많은 신사들이 계획에 들어있었다. 기대가 높은 만큼 개인적으로 만족도는 그럭저럭(또는 그 이하). 그래도 앞선 글들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교토에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몇 가지 명소들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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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
겐코안에서 큰 감동을 받고 나니 훨씬 유명한 금각사는 얼마나 더 멋질까 하는 기대감에 흠뻑 젖어 도착했으나 관광객들에 치어 사람 구경만 한 곳. 금색으로 저 멀리 번쩍이는 금각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엄청난 인파를 보노라면 실소가 날 정도였다. (그들을 피하려니 하늘을 향해 찍을 수밖에 없었던 사진은 아래 첨부) 금각사의 정원 또한 구경한다기보다는 그냥 줄지어 한 방향으로 따라간다는 느낌이었다. 방문한다면 시간대가 많이 중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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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노텐만구(北野天満宮)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며 킨카쿠지에서 숙소로 오는 길에 위치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던 곳이다. 료칸 여주인 사타코상에 의하면 원래 게이샤와 마이코가 많았던 지역이 기온 거리가 아닌 이쪽이었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 당시 키타노텐만구에서 매화를 보며 큰 다도회를 즐겨 게이샤와 마이코의 수요가 컸던듯하다. 유희의 상징과 학문의 신의 접점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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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금각사 버금가는 신사라는 뜻인 듯싶다. 그래서인지 '지쇼지'라는 공식 명칭보다 은각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금각사에 비해 더 산책하는 느낌으로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나 평일 낮에 은각사 들어가는 길의 엄청난 관광객들을 보고 한번 입장을 포기했었다. 다음날 오픈 시간에 맞춰 다시 방문했고, 아침 치고도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길을 따라 에이칸도로 걸어갔는데 철학의 길이라고 한적할 이유는 만무. 거기에 비해 에이칸도는 많은 볼거리 대비 관광객 수는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이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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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 (清水寺, 청수사)
지금 보수공사 중이라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볼 수 없어 나 또한 입장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어차피 그 앞의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를 보러 간 거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지만. 8시 반에 오픈하는 다른 신사 들와 달리 6시부터 개방하는 곳이니 아침에 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울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보수공사가 끝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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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류지(天龍寺, 청룡사)
이미 많은 신사들을 보고 난 후라 더 특별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아라시야마를 대표하는 큰 규모의 신사이고 맑은 날 하늘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아름다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교토 대부분의 사찰이 '본당 사진 촬영 금지' 규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텐류지는 제한하지 않던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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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젠인(三千院)과 호센인(宝泉院)
오하라라는 외곽지역에 있어 접근이 어렵고 일정이 여유롭지 않은 이상 방문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외국 관광객이 많은 편. 외곽이라 엄청난 정원을 기대하며 갔지만 규모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호센인의 대표 코너인 액자 정원은 정말 아름답지만 방문객이 많아 호젓이 구경할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관광객을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던 곳도 있다. 귀무덤이라 알려진 '이총'.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니 가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주택가에 둘러싸여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무난하게 조성되어 있다. 의아하게 쳐다보며 지나가는 주민들 사이에 한동안 서 있었다. 유난히 주변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던 그곳에서.
이번 여행의 시발점이 된 윤동주 시인의 시비는 조용한 도시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 햇빛 들지 않는 응달이라 전반적으로 축축함이 느껴진다. 대학 특유의 밝고 생기 넘치는 주변과 대비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곳. 앉아 있는 동안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민족의 한을 짊어졌지만 스스로는 그저 대학생이었던 청년의 젊음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