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의 무언가
한때 나는 공항을 좋아했다.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도, 반가운 재회를 위해서도 들러야 했던 공항은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평행세계 같았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에 돌아와, 그간 모국을 향했던 내 그리움이 외사랑인걸 깨닫게 되었던 시절에는, 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공항에서 잠시 위로받기도 했다. 공항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처음 혼자 여행을 한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홀로 바라본 공항의 공기에는 불안정한 설렘이 가득했고, 폐 속 깊이 들이마시면 나를 나 답지 않게 행동하게 하는 무언가에 전염되는 것만 같았다. 어렵게 잡은 나만의 여행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게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내가 목적한 그곳에 도착해서 내 모든 감정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공항은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5월 첫 주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에는 공항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해 일요일을 출국날짜로 선택했다.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기대했는데, 웬걸. 공항에서 아는 얼굴을 둘이나 만났다.
하나는 전 회사 선배로, 전날 있었던 결혼식에 여건상 참석하지 못했는데 신혼여행길에 떡 하니 마주친 것이고 (공항에 울려 퍼지는 내 이름을 믿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어머니와 교토 여행을 가는 길이 너무나도 우연히 겹친 것인데, 일부러 시간 내서 만나기도 힘들어 오랫동안 못 본 사이라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겠나 싶다.
같은 비행기로도 모자라 교토행 리무진 버스를 탈 계획마저도 겹친 덕에 버스 안에서 몇 해나 묵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친구와 그리고 친구 어머니와 함께 절대 혼자이지도 외롭지도 않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서 또 다른 공항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곳도, 돌아오고 싶은 곳도 공항을 통해 도달할 수 있으니까. 많은 우연이, 그리고 인연이 겹치는 공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