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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Nov 01. 2018

W일기_장소

스몰웨딩의 의미






그와 내가 함께 참석한 몇 번의 결혼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 우리 둘 사이 공통된 친구들의 결혼식과 연애를 시작하고 난 후 갔었던 지인들의 결혼식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나의 강력한 의견 피력은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을 무렵이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와 대전에 사는 그, 그리고 부산에 있는 나의 모든 친척들을 고려해 내가 먼저 대전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작게 할수록 직장동료나 친구들보다는 친척들이 우선이고 부산에서는 서울보다 대전이 가깝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며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할 일이 많은 그는 내가 좋아할 법한 장소들을 미리 추려놓았다. 어느 한 주말, 우리는 몇 군데 돌지 않고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데도 냉큼 계약금을 내밀지 않은 것은 레스토랑 결혼식의 가능성이 아직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이 2월이어서 실내만 가능하고, 그렇다 보니 레스토랑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당일의 매출을 거의 책임져줘야 하는 데다 하객수가 많아야 100이 넘는 큰 레스토랑이 잘 없으며 그 하루를 위해 장소를 꾸미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빨리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스몰웨딩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데도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 장소는 일반 웨딩홀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분위기의 별도 공간이었다. 돌잔치나 고희연 같은 가족행사에 더 적합한, 소규모 행사 공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루에 점심, 저녁 행사를 두 차례만 진행하기 때문에 앞뒤 예식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점, 행진을 위한 버진로드와 신부대기실이 따로 없다는 점이 오히려 내 마음에 들었다. (우뚝 솟은 그 길을 덜덜 떨며 걸어가고 싶지 않은 데다 신부대기실에 오도카니 앉아있고 싶지 않은 나의 독특한 취향이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웨딩홀 건물이기 때문에 넉넉하게 확보된 주차공간과 예상보다 많은 식권이 필요하면 다른 층의 식당으로 우회할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스몰웨딩을 알아보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주차와 예상치 못한 인원의 식대였기 때문이다.) 청첩장에는 가족행사라는 점과 협소한 공간에 대한 양해 멘트를 강조해서 넣기로 했다. 어쩌겠나, 내 결혼식인걸. 어느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생각이니.


모두가 줄 서서 ‘하나, 둘, 셋’하고 찍는 원판사진이 아닌 스냅사진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좋았다. 덕분에 드레스도 치렁치렁하지 않은 발목 위의 간편한 스타일이 가능해졌다. 웨딩홀에 요청하여 실제 제공될 음식을 시식해본 결과,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균 수준이라고 느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개별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나는, 손님들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그 작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데 익숙했다. 생일도 유난스럽지 않게 보내왔으니 결혼식이라고 다를까. 그저 가족들이 많이 모여 식사하는 어느 주말 정도로 치러내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그 그림을 기준으로 내릴 뿐이다. 결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는 웨딩홀이 아니라 앞으로 둘이서 살아갈 공간이지 않을까. 나는 처음부터 결혼식보다는 신혼집이 더 걱정이었다. 각각 대전과 서울에서 자리 잡은 그와 내가 짧은 장거리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생각하면서부터 마주하게 된 현실. 아마도 그런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웨딩홀은 상대적으로 쉽게 결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신혼집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따로 다루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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