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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Oct 31. 2018

W일기_반지

간소함에 실린 무게





여느 밤처럼 그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내 몸상태가 이래저래 안 좋았다. "혹시 결혼 준비 때문에 피곤한 건가?" 하는 그의 말에 서로 와하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말에 웃음이 날 정도로 우리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약소하게 준비 중이다. 마음먹고 부르려 든다면 참석할 사람이야 많겠지만 그래도 작은 결혼식을 원한다는 내 의견에 그와 부모님들의 동의를 얻었다. 날짜가 정해지자 식장을 보고 촬영을 잡았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다. 이 이야기는 후에 다른 글로 풀 기회가 있을 테니 오늘은 반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보통 "그런 거 필요 없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나이지만 반지만큼은 확고한 취향이 있었다. 절대 아무 장식도 형태도 없는 기본 디자인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이아를 넣더라도 반지 안쪽에 세팅하겠다 할 정도로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매일 착용해도 늘 무난하게 어울릴, 하지만 안쪽에는 우리만의 문구가 새겨진 반지를 원했다. 그도 별 말없이 따라주었다.


처음 경험한 웨딩페어에서 받았던 견적(?)은 행사가에 할인을 합치고 겹쳐도 생각한 금액을 웃돌았다. 이 생각한 금액이라는 것은, 가용범위라던가 계획한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 ‘이 디자인이면 비싸도 이 정도이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했던 기준이었다. 제시받은 금액은 디자인이 심플할수록 흠집이 도드라지니 세공법이 좋아야 한다는 이유가 바탕이 되었다. 나 또한 무조건 싼 쪽으로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니 납득은 되었다. 하지만 첫 견적인 만큼 더 알아보기로 하고 행사장을 나왔다. 관련업에 있는 그의 친척을 통해 받은 가격은 좋은 재질임에도 웨딩페어보다 가격이 낮았다. 기쁜 마음으로 안쪽에 새길 문구를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반지를 보고 온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시집올 때 받은 안 쓰는 패물이 있으니 녹여 쓰라며 당신의 쌍가락지와 아버지의 묵직한 반지 하나를 꺼내 주셨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통이 크셔서 막내아들 예물도 시원하게 해주셨나 보다. 하지만 다시 알아보니, 예물의 특성상 원재료보다는 세공비가 큰 법이라 녹여 쓴다 해서 금액이 크게 절감되지 않았다. 게다가 실제 가져간 금을 녹여서 만들어주지 않고 따로 매입하여 그 금액만큼을 새로 만든 반지에서 빼 주는 개념이라 한다. 그렇다면 구태여 할머니의 기억이 스민 패물을 팔고 싶지는 않아 어머니께 고이 돌려드렸다. 역시 중요한 것은 마음, 그리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받았으니 되었다며.


그렇게 그와 나의 반지가 만들어졌다. 세상 모든 귀금속점이 취급할 만큼 흔한 모양이지만 우리가 정한 문구가 새겨져 한결 의미 있을 한 쌍의 반지가. 평범한 동갑내기 커플이지만 25년을 돌아 서로에게 닿은 우리의 남다른 이야기처럼 내 마음에 쏙 드는 특별함을 담아. 마음 가장 안쪽부터 깊숙이 설레는 순간이다. 얼마 전부터 끼고 있어 반지는 이미 처음의 광택을 잃었다. 그런데도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미래의 반지가 더 기대되는 것은 왜일까.


이로써 나의 짧은 예물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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