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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Nov 08. 2018

W일기_통장

부담 없이 나에게 오기를





그와의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미 유부녀가 된 한 현명한 친구가 말했다. 연애할 때 데이트 통장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아무래도 지출이 많은 남자 쪽은 연애가 (특히나 장거리 연애가) 길어질수록 부담이 누적되니, 데이트 통장이 있으면 편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이후 결혼 준비가 시작되면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 급하게 필요한 각종 계약금 등을 내기에도 편하다고. 그리고 친구의 말은 곧 예언이 되었다.


장거리 연애 두 달 만에 이미 그의 지출이 심각하게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 거리를 오가는 그는 신체적 피로에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고 있었다. 한 달 지출이 얼마나 클지 나는 가늠도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데이트 통장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한 달 후 연애에 빠진 우리가 얼마나 흥청망청인지 알게 되었다.)


결혼 준비로 넘어오면서, 어지간한 것들은 다 데이트 통장으로 처리하고 있다. 촬영 준비로 자잘하게 구입하는 소품들을 내것 네것 하기도 곤란한 상황에 데이트 통장의 존재가 참 기특하지 않을 수 없다. 한쪽 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도, 둘 중 하나가 이동해야 할 때도 고민이 덜하다. 우리는 월급날이 같아서 매월 월급날 기준으로 충전 하지만 웨딩반지 구입 등 굵직한 지출을 위해서는 중간에라도 한 번씩 추가 입금을 한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치지 않는 것은 그와의 연애에 있어 나도 대등하게 기여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나에게 답이었다고 모두에게 정답이라는 법은 없지만,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나와 그는 오래전부터 친구로 시작했고, 동갑인 데다 사회생활을 비슷하게 해서 더 쉽게 받아들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나에게 해주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면 함께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었다. 오롯이 나를 향한 마음으로 기쁜 발걸음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길이 그에게 부담되지 않기를. 그가 지치기 전에 나에게도 어느 정도 기댈 수 있기를. 그런 반쪽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으로 앞으로의 길도 걸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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