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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Mar 06. 2019

W일기_식순





간소하게 준비하고 있는 결혼식이라지만, 당장 코앞으로 다가오자 계획 비슷한 무엇이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식순을 짜야할 타이밍이 온거다. 남들이 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의미가 없으면 빼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일반적인 식순과는 조금 달랐던 포인트들은 이렇다.





사회로 친오빠를 세우는 것. 나는 사실 여자가 사회를 보는 결혼식을 꿈꾸어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돌보아야 할 아기가 있는 데다, 친오빠가 훤칠해서 시아버지가 강력히 추천하셨고 오빠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신부 오빠가 사회자인 것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 가족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한복을 입기로 한 것. 한복 입은 어머니들과 양복 입은 아버지들의 동양도 서양도 아닌 조화가 언발란스하다 생각해 오던 참에 마침 시아버지가 한복을 입고 싶으시다 해서 갈등 없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한복 대여를 하러 갔을 때 남성용 한복은 종류가 많지 않은게 조금 아쉬웠다. 게다가 한복 입은 아버지 손을 잡고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내가 입장하는 조화도 덩달아 조금 이상해졌다. 결국 나는 신랑과 손을 잡고 동시 입장하기로 했다.


친척 소개를 식순에 넣기로 한 것. 대부분 결혼식 당일날 홀 앞에서 어수선한 분위기에 오가던 양가 친척들의 소개가 아쉬웠던 나는 먼길 오신 분들이 서로를 마주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폐백이 없으므로) 기회를 조금 더 강조하고 싶었다. 하여 나의 친척들은 내가, 그의 친척들은 그가 각각 마이크를 잡고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스몰웨딩에 익숙지 않은 가족들이 편한 대로 뿔뿔이 흩어져 앉으셔서 원활하게 소개가 진행될 것 같지 않아 식 시작 직전에 이 순서를 통째로 들어내버렸다. 덕분에 안 그래도 짧은 식이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만약 다시 한다면, 그리고 이 순서를 꼭 넣어야 한다면, 외국처럼 사전에 정확한 참석인원과 지정석을 마련해두어야 할 텐데...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친척들을 상대로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혼인신고서를 현장에서 작성하는 것. 미리 받아본 혼인신고서에는 두 증인의 싸인란이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부모님들의 사인을 받아 실제 제출할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순서를 넣었다. 우리는 실제로 이걸로 혼인신고를 했고, 나름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웨딩홀에서 제공하는 입장/행진음악은 심하게 뻔한 것들이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로 준비하기로 했다. 예전에 뮤지컬 웨딩을 했던 친구의 결혼식이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있어서 찾아보다 한 업체에 연락하게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홀은 신부대기실도 버진로드도 따로 없는 레스토랑식 공간이니 하객들 사이로 오가며 축가나 행진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다 지나고 나서 영상을 돌려보고 더 확실해진 것이지만, 식의 절반이 뮤지컬이었을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덕분에 비전문적이었던 다른 순서들이 무난하게 진행되는 것 같이 보였던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다 해도 선택할 것이고, 고려중인 사람들에게 추천도 하고 싶을 정도.)


포토테이블을 없애고 큰 액자 세 개를 전시하게 되었다. 일부러 행사를 위해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정해진 스드메 대신 우리가 직접 찾아서 컨택한 작가에게 의뢰해 힘들게 리허설 촬영을 했는데, 그중 양가 부모님들께서 각각 마음에 드시는 사진을 골라 우리 커플과 같은 사이즈의 대형 액자를 총 세 개 주문했고 공교롭게도 세 가지가 모두 다른 이미지였다. 하여 결혼식 당일 각 집에 걸려있던 액자들을 가져다 같은 사이즈의 세 가지 다른 웨딩사진을 나란히 이젤에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식이 끝나고 가족, 동료와 친구들 순서로 줄 서서 찍는 원판사진은 생략하기로 했다. 홀 대관 패키지에 스몰웨딩은 스냅사진이 포함되어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느껴졌다. 예식장에서는 부모님들이 서운해하실 것이며 절대 반대하실 거라 했지만 계단식 단상도 없는 작은 홀에서 누구는 식사 중이고 누구는 줄 서서 사진을 찍는 엉성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며칠 지나고 나서 신랑이 "그래도 원판을 찍을걸 그랬나?" 하고 아쉬워하던 건 아이러니.


홀에 100명이 겨우 들어가다 보니 그의 회사 동료들은 다른 층의 식당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때 볼 수 있게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하기로 했다. 덕분에 해외에 있는 내 친구들도 원한다면 실시간 방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층으로 간 회사 동료들은 라이브 방송을 단 한 명도 보지 않았다. (너무 신문물이었을까.) 이 영상은 오히려 나와 신랑에게 더 의미 있는 자료로 남았다. 신랑신부 당사자라 보지 못했던 식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이 사진과는 또 다른 포맷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전문 영상업체의 결과물의 경우 우리 기준에서는 너무 인위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영상에 조금 능한 지인을 활용하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머릿속으로는 아직 어색한 구석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없어 보이지만, 현실에서 지금껏 그려왔던 아주 오붓하고 가족적인 결혼에 얼마나 가깝게 해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자도 아니거니와 변수로 가득한 현장에서의 사건사고들은 어느 정도 내려놓았기 때문에 신랑의 임기응변에 기대 대망의 그 날을 맞았다.






대학생 때 가장 친했던 두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며 가족과 하는 작은 결혼식이라 챙길게 많지 않다 했더니 둘 다 “that’s very you(너 다운 결혼식)”라고 했다. 막상 나는 나 다운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아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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