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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May 27. 2019

일기70

근황





두고 떠나온 생활과 새롭게 발을 들여놓은 환경 사이에서 과도기를 맞이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죄 없는 남편의 말에 한껏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기만 기다리고 싶다가도 아기를 만나기 전 뭐라도 시작해 놓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정면으로 맞부딫혔다. 사실, 이것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예정일을 사흘 남겼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 아래로 처진 무거운 배를 안고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남편이 이 집에 들어온 4년 내내 한 번도 건드린 적 없다는 곳을 박박 문질러보기도 하고, 이미 얼마 전 때 빼고 광낸 곳도 다시 한번 솔질해놓는다. 마지막으로 물을 뿌리고 나면 느껴지는 공기 중의 눅눅한 습기와 세제 냄새를 들이마시며 잠시 서서 숨을 돌린다. 청소란 것은 끝이 없는 데다 해도 해도 티가 안나는 노동이라는 것을 느지막이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평소에도 자주 하던 인터넷 쇼핑의 분야가 패션에서 청소도구와 세제, 생활용품으로 바뀌어 요즘에도 쉴 새 없이 택배 기사님들이 문을 두드린다. 부모님과 살 때는 내 방청소도 잘 안 하던 나였으니 어머니가 보시면 여간 어이없어하실 일이 아니다.





오늘은 정말 오래간만에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뜨겁게 달구어졌던 땅을 식히며 선선한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격렬한 청소로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한 단계를 끝내 놓고 잠시 앉아있으려니 아기는 평소처럼 뱃속에서 움찔움찔 딸꾹질을 한다. 그래그래 하며 느릿한 손길로 쓰다듬으면 엉덩이를 씰룩이는대로 배가 꿀렁인다. 오늘은 집안일을 했으니 운동을 건너뛴 엄마를 하루만 눈감아주렴. 꿀렁꿀렁. 아빠는 조금 늦으신다니까 오늘 저녁에는 엄마랑 맛있는 거 먹자. 꿀렁꿀렁. 아가, 이렇게 평범한 매일을 보내다 때가 되면 만나자. 조용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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