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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n 14. 2019

편지10

아름다웠던 3일간의 기록

*이 글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가 아닌, 출산과정을 담은 번외 편입니다.







자연출산을 준비했다. 의료적 개입이 많은 일반 자연분만에 비해 아기가 주체가 되는 자연주의 출산. 무통주사나 필요 없는 회음부 절개, 음식물 섭취 제한 등을 최소화하고 의료진은 위급 시에만 개입을 하며 조산사와 남편이 산모를 도와 거의 모든 과정을 진행한다.

*여기서 자연주의 출산, 자연출산, 자출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자출에 실패했다.
아니, 대성공을 한 건가?


아기를 예정일 전에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살포시 품었던 기대를 보기 좋게 꺾으며 일주일이 추가로 더 흘렀다. 그 사이 혹시라도 아기가 자연출산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까 마음 졸이며 몇 번 더 정기검진을 했고 아기가 원할 때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제왕절개나 유도분만을 피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더는 기다리기가 불안해져 예정일이 열흘 넘은 날에 맞추어 유도분만을 예약했고 전날이라도, 당일 새벽이라도 자연진통이 걸리길 바라며 짐볼을 타던 나는 속상함에 남편에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8시, 진통으로 급박하게 넘을 거라 생각했던 분만실을 여유롭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터덜터덜 들어서게 되었다. 간단한 검사 후 곧 촉진제 투여가 시작됐다. 포기와 적응이 빠른 나는 금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제 유도라도 잘 되기를’ 바라며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았다.


자연출산을 하기로 한 우리 부부는 여느 가정집 안방 같은 분위기의 분만실에 가방을 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3일간 나오지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하면서. 하루 종일 누워 촉진제인 옥시토신을 맞았고 그래프가 격동의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마치 무통주사를 맞은 듯 평온했다. 진통이란 것을 경험한 적 없던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담당의가 퇴근 전 내 상태를 체크하러 왔고 인계받은 당직의가 오후 5시쯤 들어와 하루 동안의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촉진제 투여중, 제발 효과가 있기를

출산의 징후(이슬, 가진통, 양수 파수 등)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들어온 산모의 경우, 특히나 하루 동안 촉진제에 전혀 반응이 없을 경우 다음날 같은 방법의 접근을 하더라도 더 나은 예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좌절감이 찾아왔다. 당직의는 어차피 원하는 것은 자연출산이니 차라리 오늘 귀가하여 며칠 더 자연진통을 기다려보고 정 아니면 그때 다시 촉진제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고려해보겠다 하고 일단 오늘의 촉진제 사용 경과를 확실하게 할 내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진 결과 의외로 입구가 1.5센티 열렸으며 경부가 50% 정도 얇아져 아주 진행이 안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저녁에라도 자연진통이 걸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니라도 내일 다시 촉진제를 써 보자는 말을 남기고 당직의가 방을 나갔다. 다시 살아난 희망의 불씨에 잔뜩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남편과 근처 대학 캠퍼스에서 산책 후 카페를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아래로 울컥 대며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고, 양수가 터졌음을 직감했다. 양수가 터지면 곧 자연진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진 때 당직의가 일부러 강하게 가했던 자극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점진적인 가진통을 느끼게 되었고 12시부터 잠을 못 잘 정도로 그 강도가 세졌다.


그럼에도 그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통을 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태동검사기에 진통의 주기와 강도가 표시된다

그렇게 긴 첫밤을 진통으로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서 호르몬이 바뀌어 진통이 조금 잦아들었다. 밤사이에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왕성하여 진통이 심해지기 마련이며 가진통의 경우 아침에는 사그라들 수 있다는 정도는 사전 교육으로 들어 예상하던 일이었다. 둘째 날 낮에는 조산사가 나에게 강도 높은 운동을 시키며 진진통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안 그래도 예정일을 지나 잔뜩 부푼 배를 안고 중간중간 진통으로 멈춰 섰다 가기를 반복해서 10층 계단을 7번 오르내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통이 나를 아기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조산사는 나에게 밤사이 힘든 시간을 보낼 테니 조금 쉬어두라고 했고 참을 수 없이 나를 괴롭히는 진통에 계속해서 깨면서도 그 사이사이 쪽잠을 잤다. 그런데 휴식 후 진통이 다시 잦아들었다. 진진통의 경우 밤낮의 호르몬이나 자세의 변화로 그 강도와 주기가 유지되는데 반해 나같이 계속 진통이 사그라드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조산사도 조금 지쳐가는 듯했다.


결국 더 강한 진통과 함께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진통 한지 24시간이 지나며 나도 힘이 빠져 있었지만 무통주사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진통 없이 분만실을 처음 들어서던 나에게 고통은 아기를 만나기 위한 문을 여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새벽 5시, 드디어 마의 고지인 4센티가 열리고 진통 강도와 주기도 좋아 이제 본격적인 출산의 과정으로 들어갈 것이라 조산사는 예상했다. 빠르면 새벽에 아기를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서 또다시 진통의 세기와 주기가 벌어졌다. 조산사도 예상치 못한 일이고 이런 경우가 잘 없다고 말했다. 다시 좌절감으로 온몸이 휩싸여 있었다. 셋째 날 오전 9시쯤 조산사가 첫날 자연진통을 걸어준 당직의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마냥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더 지칠 것이니 차라리 촉진제로 속도를 내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힘을 내어 촉진제가 일으킨 강하고 짧은 주기의 진통에 몸을 맡겼다. 오후 1시 내진 결과 5센티가 열렸고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1시간에 1센티씩 열릴 것이기 때문에 늦어도 다섯 시간 안에 출산이 예상됐다. 2박 3일의 긴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촉진제가 진진통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며


그런데 한 시간 후
내진을 한 조산사의 얼굴에
긍정의 빛이
다시 사라져 있었다.


이쯤 되면 적어도 6~7센티는 열렸어야 하는 입구가 4센티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아기가 골반으로 진입하다 수축이 약해지거나 방향이 맞지 않아 후퇴하기도 하는데 아기의 머리로 강하게 누르던 힘이 사라지니 입구가 다시 줄어들 수도 있다는 해석이었다. 지금보다 더 강한 약은 쓸 수 없는 데다 3일째 수축한 내 자궁도 걱정이며 지금까지 잘 버텨준 아기 상태도 이제 슬슬 걱정되는 단계였다. 이제는 정말 제왕절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주의 출산의 기본 취지가 그러했다. 의료진의 개입을 배제하고 하는 출산이 아니라 위급 시 최소한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나는 지금 제왕절개가 절실하게 필요한 산모가 되어 있었다. 조산사 너머로 삼일 동안 함께 진통해준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나는 나지막이 “최선을 다 했어”라고 말했다. 제왕절개를 고려하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시간, 촉진제를 쓰며 강도 높은 운동을 해보자는 조산사의 의견에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다시는 겪지 못할 고통 속에 몸을 비틀며 경부를 열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제왕절개 수술을 준비하는 사이 한 시간 더 누워서 약의 경과를 지켜보게 되었다.


남편과 마주 보고 누우니
그제야 진통으로 가득했던
삼 년 같은 지난 삼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참기 힘든 산통 중에도 이를 악물지언정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나는, 결국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냐며 오열하고 말았다. 가만히 안아주던 남편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때, 삼일 내내 끝없는 진통 중에도 잘 버티던 아기의 심박이 처음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산사가 뛰어들어와 한 시간 경과는 지켜보지 말자며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수술대에 올랐다. 입원한 지 56시간 만이었다. 처음 유도분만을 하기 위해 입원하며 포기와 적응이 빨랐던 나답게 다시 금세 현실에 적응하여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들어간 수술은 30분 남짓 소요됐다. 수술 후 가슴팍 위로 올려진 아기의 무게감과 얼굴을 돌리며 느껴졌던 고갯짓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예정일을 훌쩍 지나면서 마음고생시키던 기억도, 지난 삼 일간의 산통도 날려버릴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41주 5일을 품고 세상에 내어놓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나는 그렇게 겨우 품에 올렸다.


수술은 첫날 내진으로 희망의 불씨를 살려주었던 당직의가 진행해주었다. 덕분에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도 한결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삼 일간의 진통을 도와주며 수술로 마무리해준 그의 결론은 아기의 머리와 산모의 골반이 맞지 않아 예정일이 지나서도 자연진통이 오지 않았을 가능성 높고 같은 이유로 촉진제에도 진행이 안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기의 이마는 골반에 끼었던 자국이 선명한 채로 지난 삼 일간 부단한 노력을 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심박이 떨어지지 않고 태변도 보지 않았다니, 대견하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며 받은 사전 교육에서 조산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출은 그 옛날 산파가 와서 집에서 아기를 낳는 열악한 출산이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걷어낸 아기 위주의 건강한 출산이다. 산모와 아기가 건강한 상태로 가능한 한 자연적인 노력을 해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박한 케이스로 제왕절개로 넘어가는 엄마들은 그 노력에 위로받아야 마땅하다. 흔히들 진통하다 제왕절개 하는 엄마가 제일 억울하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 진통만 40시간 하다 제왕절개를 한 나는 일말의 억울함이나 아쉬움이 없다.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아기가 잘 버텨주었으며 남편과 의료진의 끝없는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제왕절개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난 삼일이 단순히
지긋지긋한 진통의 기억이 아니라
아기를 만나기 위한
아름다웠던 마지막 여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


이제 이 세상에 도착한 아기와 함께하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아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수술에서 회복 중이다. 최선을 다해서.


제왕절개로 무사히 세상에 도착한 아기





*자연주의 출산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겠냐는 질문에, 남편은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도 자연주의를 고려할 정도로 이번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지금은 그저, 아름다웠던 3일을 이렇게나마 기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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