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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n 20. 2019

편지11






새벽에 일어나 유축기와 씨름했는데도 다섯 시 반이면 눈이 떠져. 십 년 넘게 이어온 습관이 이럴 땐 참 유용하구나 싶다. 여섯 시에는 수유콜을 달라고 말해놓았으니 그전에 얼른 젖을 돌게 할 간식을 먹고 목욕재계한 후 연락을 기다려. 보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유리창 너머의 네 뒤통수를 보고 오기도 하지. 이유식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다 아직 생후 열흘도 되지 않은 너라는 걸 겨우 기억해낸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함께할 많은 시간이 있구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의 너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너는 빨리 자라고 있다.


어제는 평소보다 오랜 시간 방에 너를 데리고 있었지. 네가 어떤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식의 표현을 하는지 알고 싶었거든. 역시나 네 불만의 이유를 알아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우리 한걸음 나아간 게 아닐까. 조리원의 밤은 생각보다 외로워. 너도 아빠도 없는 방에서 새벽에 깨어나 잘 나오지 않는 모유를 짜내다 보면 생전 외로움을 느끼지 않던 나도 외롭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더라. 엄마들끼리 마주 앉으면 온통 너희들 이야기뿐이야. 우리는 모두 너희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날을 기다려. 두렵기도 하지만, 진짜 엄마로 홀로 서는 날이기도 하니까. 너희의 존재로 우리는 엄마가 되었어.


어제는 신생아실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 대사증후군 검사 결과 수치 하나가 비정상이라 재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하얗게 질려버렸어. 상담에서 돌아오니 서럽게 눈물이 나더라. 재검하면 괜찮은 경우가 허다하다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방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동동거리다 겨우 안고 돌아오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

사랑해, 너무 보고 싶었어.

귓가에 속삭여주니 잘 웃지 않는 네가 씩 웃었어. 앞으로 너도 나도 울어야 할 날이 더 많은 걸 알아. 하지만 너를 기다리던 그 날의 간절함을 내가 늘 기억하기를. 네 시시콜콜한 모든 성장과 변화에 감사하기를. 네가 서툰 내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볼게. 늦어지는 수유콜을 기다리는 지금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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