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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an 10. 2020

일기77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고,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알레르기 증상을 몇 번 보인 터라 정확하게 진단받고자 소아 피부 전문 병원으로 어렵게 예약해서 진찰을 받게 되었다. 엄마가 아토피, 아빠가 천식이 있었던 나의 아이가 아토피 일 확률은 50%라고 했다. 거의 80~90%에 육박하리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다행이었다. 팔 바깥쪽 거친 피부는 아무리 보습해줘도 나아지지 않았었는데, 바로 아토피 증상이라고 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을 해오던 나에게, 의사는 위험한 일이라며 특히 계란 흰자를 육 개월에 접하게 한 나를 나무랐다. 그 부분은 나도 성급했다 생각했기 때문에 더 위축되었다. 식단을 짜 줄 테니 미음으로 먹이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해준다 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서 뽑는지는 봐야 한다며.


또래보다 크지만 아직 7개월이 채 되지 않은 나의 작은 아기. 접종 주사를 맞을 때도 차마 내가 안지 못해 아기 아빠와 갔었고, 이전에도 다른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자 했지만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에 검사를 미루고 돌아 나왔었다. 일단 남편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주사실로 들어섰다. 내가 바늘로 찔릴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었다. 다행히도 발목에서 한 번에 뽑았지만 피를 짜내기 위해 아이 다리를 주물러가며 성인보다 오랜 시간 바늘을 꼽고 있었다. 허벅지에 접종 주사를 맞을 때 조금 울고 그치던 아이는 이번에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다. 지혈을 하는데도 어른보다 오래 걸렸고 누르고 있느라 안아주지 못하는 동안에도 손을 떨며 얼굴이 빨개져 울었다. ‘엄마가 아토피였어서 미안해. 아픈 거 시켜서 미안해. 함부로 먹여서 미안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이를 안고 토닥이는 것밖에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하필 오늘따라 비는 왜 이리 오는지. 또 하필 병원 주차장은 왜 외부에 있는지. 비를 맞아가며 카시트에 앉히는 동안도, 10분남짓 되는 짧은 거리를 운전해 오는 동안도 아이는 간헐적으로 울었고 집으로 와서도 내내 보챘다. 다시 마트로 데리고 나와 병원에서 알려준 이유식 재료를 사서 들어오는 동안 아이는 드디어 단잠에 빠졌다. 아이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기다리느라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나도 하루 중 처음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병변 부위가 크지 않은데도 병원은 분유를 바꾸라, 세정제와 보습제를 바꾸라,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라, 유니캡 검사를 해야 하고 이유식은 철저히 알려주는 대로만 하라고 했다. 놀란 마음에 시키는 대로 다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이 병원에 매여 한 달에 두세 번 드나들 정도로 아이가 아픈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피를 뽑은 아이의 발목에는 피멍이 들었다. 당일에는 그 부분이 다시 만져지면 크게 울음을 터뜨렸었다. 5일째인 오늘도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눈에 띈다.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는 화가 솟구친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반복될 일.

익숙해져야 하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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