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온 지 6개월,
이미 계획했던 시간의 반이 지났다.
이 길 위에서 얻고 잃는 것들이 많을 거라는 것은
눈 감고 귀를 막아도 뻔히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잃을지는 나도 알 수 없었더랬다.
커리어? 애초에 욕심내지 않았다.
돈? 지금이 아니면 있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내가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상실감으로 돌아왔다.
돈독해질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던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
그것이 세상 어떤 모자보다
단단해져서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시작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일어났다.
직장을 이유로 저녁에 짧게, 그리고 주말에만 기여하던 육아에서
24시간 오롯이 감당하게 된 뒤치다꺼리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한국에서 처방받아온 마지막 항우울제까지 떨어지고 나서였다.
이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철저히 무릎 꿇을 줄은 몰랐다.
나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아이에게 쏟아내며
희생자 프레이밍을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는데.
역시나 그러고 있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 포장하며
쉴 새 없이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한 번 터지면 멈출 수가 없는 거다.
마치 폭주하는 다른 어미의 몸에 빙의되어 남의 눈으로 관전하는 기분으로
멈추어야 하는 걸 알지만 그럴 수 없는 폭발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 여자가 내가 아니길.
이 앞에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길.
이 날카로운 말들이 아이에게 닿지 않길.
그럼에도 기댈 곳은 나 밖에 없는 아이.
그게 아니라도 오롯이 나만 사랑해 주는 아이.
그 아이가 서운함에 울 때까지.
내밀어 오는 손을 고집스럽게 뿌리쳐가며.
캐나다에서의 적응은 쉬웠다.
나에게는 익숙한 언어, 익숙한 거리.
그런데 그 속에서 나를 잃었다.
스스로의 바닥을 경험하고, 깊이 실망하고,
혹시, 아마도 어쩌면,
내가 아니라야 안전할지도 모를
아이의 안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정신 차릴게,
엄마가 정신 차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