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17_다시 만난 U

또 다른 모습으로

by 일랑





나는 내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든다. 타인에 의해 이름이 불릴 때면 (특히 ~씨가 붙으면)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이름만 놓고 보면 흔하지는 않은 내 성과의 조화도 나쁘지 않으면서 심하게 튀지 않아서 좋다. 비슷한 이름은 많지만 똑같은 이름은 아직 마주친 적 없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전 회사에서 일할 때, 다른 회사와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날 담당자들끼리 명함을 교환하는데 상대회사의 막내 담당 이름이 나와 같았다. 심지어 나보다 더 희귀성이었다.


덕분에 업무적인 통화를
할 때마다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을 찾는
기이한 경험을 하곤 했다


U와 나는 이름과 나이대만 같았지 그 외 모든 것이 달랐다. 아담하면서 단정한 외모의 그녀는 말도 차분하게 하면서 논리적이고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완벽한 느낌이라 선뜻 친근함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특히나 양사 간 입장을 각자 대변하는 입장에서 마냥 친하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 회사의 입장 차이는 어마 무지했으니까.)


1여 년간 이어진 협업 프로젝트가 끝나고 더 이상 그 팀을 만날 일이 없어졌을 즈음 U가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후에 내가 이직하게 된 회사도 바로 그 회사였다. 같은 분야였기 때문에 사무실이 비슷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출근해 보니 나와 그녀의 자리는 대각으로 등을 맞대고 있었다. 자리만 가깝고 소속된 팀은 너무 달라 전혀 교류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실에서 마주친 U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 혼자 곁눈질한 지 몇 주, 아니 아마도 몇 달이 지나 그녀가 나에게 "혹시..."라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네, 저예요!"하고 튀어나와버렸다. 그녀로서는 다른 팀에 누군가 새로 온다는 말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나를 회사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지도 못해서였을 것이다. 이후 자리는 아주 멀어졌지만 사내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 식사도 한번 같이하게 되었다. 그녀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느끼게 되었다. U는 이미지처럼 칼 같고 똑 부러지는 알파고 같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약간은 허술하기도 하고, 또 간간히 헐렁한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는 그녀가 순수하게 나를 못 알아볼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정답만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도 하는 모습은
처음 내가 가졌던 U의
인상에서 조금 의외의 면모였다


지금까지는 나름 사람을 잘 판단한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것이 자만이라 것을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결국 내가 해 온 것은 '지레짐작'일뿐이었음을. 물론 우리가 서로를 보지 못한 몇 년 새 U도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이직 후 표정도 성격도 많이 변했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더라 할지라도, 아니 그래서 더, 누군가를 내 판단의 프레임에 가두기보다는 매번 열어두고 바라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큰 틀은 변함없다. U는 여전히 아담하고 단정하며 상냥하니까. 아예 건물이 달라지고 나서는 식당에서나 뜸하게 마주치는, 나와 같은 이름의 그녀. 새로운 환경의 낯섦에 한없이 작아질 때 내가 아는 누군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던 시절, 희미한 인연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는 걸 U는 알까. 또 어디로 갈지 모르고, 또 누구를 만날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새로움이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되어
매 순간을 선입견 없이
마주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