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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n 25. 2017

일기18_기억을 묻던 날

연약한 생명이 남긴




초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 앞에도 간간히 삐약대는 여린 것들을 파는 상인들이 왔었다. 하굣길 학교 후문이 병아리 소리로 가득할 때면, 나는 아이들을 비집고 들어가 상자 가득한 노랗고 보송보송한 생명들을 넋 잃고 바라보다 오곤 했다.


결국 어느 날 병아리 한 마리를 집으로 사들고 들어오는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봉지 속에서 바스락대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생명에 잔뜩 설레어서는, 커서 닭이 되면  베란다에서 키울 수 있을까 하며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부터 했더랬다. 삐약이라는 1차원적인 이름을 주고 학교가 끝나면 가방만 던져놓고는 병아리를 들여다보며 일방적인 대화를 시도하곤 했다. 그렇지만 첫날 우렁차게 삐약대던것이 며칠 지나자 꾸벅꾸벅 졸더니 잘 먹지도 못하다 결국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해도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지우고 싶은 꽤나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그때 나는 애정을 준 대상과 처음 겪는 이별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당시에는 두꺼운 종이로 직접 만든 필통이 학교에서 유행이었다. 직접 공들여 만든 필통을 비우고 삐약이를 보내줄 준비를 했다.  너무도 작고 가녀렸던 생명은 필통의 1/4도 채우지 못했지만 삐약이가 이 다음 생에서도 넓은 곳에서 뛰놀기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넣어주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기로 하고 삐약이를 담은 수제 필통을 산기슭에 친구와 함께 땅을 파서 묻어주고는 다리가 저려 더 이상 못 참겠을 때까지 둘이서 말없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돌아왔다.


나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갔고 그 후로 다시는 어린 생명을 거두어 키우겠다 나서지 않았다. 10년쯤 지나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삐약이를 묻어주었던 산기슭에 가보니 땅이 개발되어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갇혀있던 필통에서 나와 더 넓은 세상을 누비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잘 된 게 아닐까 하며.





병아리를 허무하게 보내야 했던 기억은 나에게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생명을 거둘 능력도 자격도 없으면서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동물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늘 "그냥, 그래요"라고 대답하는 이유는 아직도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 아닌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기엔 내가 너무 미성숙해서. 그래서 이리도 혼자가 편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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