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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l 09. 2017

일기22_꿈꾸듯 그린 집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멀기에




한 집에서 5년 이상 살아본 적 없는 나는 내 공간을 꾸미는데 크게 욕심내지 않는 편이다. 그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만이고 쉽게 옮길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래서 줄곧 내 방은, 나의 직업도 취미도 성격도 취향도 반영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곧 있을 여행의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이런저런 사진을 뒤적댄다. 여행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는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서 사는듯한 기분을 잠시나마 내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럴 때면 나도 그동안 감추어두었던 집에 대한 욕망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거실 한쪽 가득 넓은 창이 난 곳이 좋겠다. 비 오는 날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면 마치 빗속에 있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커다란 창.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앉아 비 구경을 할 수 있게 창을 마주 보는 곳에 소파 하나를 두어야겠다.


천장이 높은. 그래, 로프트 형식의 복층이면 좋겠다. 빛없는 어두운 밤에 달빛을 조명 삼아 길게 늘어뜨린 커튼이 춤추듯 은은하게 흔들리도록 높이 트인 공간이 좋겠다. 소리가 천장까지 올라가 울리는 느낌이 좋아서 늘 무언가를 틀어놓을 거다.


가구는 거의 없어도 커다란 액자 하나는 너른 벽에 걸어두고 싶다. 그림도 좋고 사진도 좋고 친한 이의 것이면 더없이 좋겠고. 거실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대단한 정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무로 된 데크는 있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의자 하나 가져나가 온몸으로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그려본 집이 있지 않을까. 살아 볼 수 있을지, 그런 기회가 이번 생에 내게 올 지는 모르겠다마는. 상상을 하나씩 덧입혀 채워나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집이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쯤 있지 않나. 색깔 없는 방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는 나에게도 그런 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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