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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l 18. 2017

일기25_울지 않는 매미

모든 것에 때가 있음에도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드니

여지없이 밤에는 매미가 운다

매앰 매앰 우는 소리를 멍하니 듣다

피로가 그것을 이겨내면

비로소 나의 긴 하루도 저문다





아침에 집을 나서려 현관에 섰는데

베란다 방충망에 까맣고 커다란

매미 한 마리가 배를 까고 매달려 있다


소리를 내지 않아 지나칠 뻔도 했지만

어지간히 커야 안보이지

시커먼 것이 참 멀리서도 보인다


울고 있었으면 아마 저리 가라며

방충망을 한번 흔들고 나왔을 텐데

조용히 숨죽여 매달려있길래

네 편할 대로 하라며 두고 나온다





자고로 우렁차게 울어댈수록

여름의 매미다운 것인데

저놈은 제 몫을 못하는 것 같아

돌아서는 마음이 짠하다


마치 숨죽여 하루를 살던 누구 같아서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내야 할 목소리도 내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누가 떠올라

울지 않는 매미가 하루 종일 어른댄다





목청 좋은 놈들이 눈총 받을지언정

당당하게 울며 한철 살다 가거라

지금 아니면 언제 울어 보려고

짧은 계절 허무하게 보내고 있는지


앞으로는 방충망을 찢을 기세로

울어대는 매미를 쫒으면서도

진심으로 미워하지는 못할 듯하다

매미는 자고로 울어야 매미다운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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