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내상황을 투여하는
여행 중이었다. 미국 테네시주 개틀린버그의 한 호텔.
저녁시간에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밤에 돌아다니면 안전상 좋지 않으니, 호텔 내부 시설을 좀 이용해 보려던 참이었다.
미국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씩 한국사람들을 마주친다. 보통은 그냥 원래 그렇듯 무심한 듯 서로 지나치지만, 특정한 상황에 함께 놓이면 몇 마디 말을 나누게 된다.
한 번은 호텔 수영장에서 한국 사람을 마주쳤다. 말을 걸어오셨다. 그때 남편은 잠깐 자리를 비워서 나와 아이들만 있었다. 그분은 우리를 보며 갑자기 남편이 군인이냐고 물으셨다. 그랬다.. 본인의 남편이 미군이었던 것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분은 친절하고 나이스하셨다.)
근데 재밌게도 미군 와이프를 만나면 나에게 남편이 미군이냐며 묻고, 주재원 가족을 마주치면 나에게 남편이 어느 회사에 다니냐고 묻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묻는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신 분일 수록 더 그렇다. 한 번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두 분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두 분은 미국에 오게 된 계기가 전혀 달랐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 참 재밌었다. 한 분이 다른 한 분에게 여가 시간에 뭘 하는지 취미가 뭔지 묻는 느낌의 질문을 하시면서, 골프는 왜 안 하는지를 물었다. 질문을 받은 분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분이 골프를 꼭 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골프를 안 하는 것은 그분의 선택이고 취향이다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보통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본인의 경험을 비추어 상대를 바라본다. 내 경험의 거울을 씌워 상대가 그럴 거라고 가정한 질문을 한다.(그래서 대화가 겉돌게 된다.) 하지만 전혀 예상 못한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경험이 되고, 경험한 만큼 내 것이 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의 상황이 같지 않다. 그리고 모두가 미국에 오면 골프를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취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한국인의 특징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질문, 오픈형 질문이 별로 없다. (안 그런 분들도 물론 많다.)
왜 그런 걸까. 우리는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성장해서 그런 걸까? 인종도 하나, 바라보는 곳도 하나, 전 국민이 같은 방향을 향해 전력질주 하듯 사는 그런 팍팍함 속에 당연하게 물들어 버린 걸까. 종종 본인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가치에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표현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한국밖에 나와서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우리의 생각보다 세상에는 훨씬 많고 많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미국의 이미지와 실제로 내가 겪은 느낌은 살수록 정말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아날로그였고, 생각보다 여유로웠고, 생각보다 답답했고, 생각보다 정말 많이 일처리들이 늦었고, (일처리가 늦지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시스템화되어 가고 있다.) 생각보다 합리적인 부분도 있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장점을 꼽자면 다양함을 인정하는 문화다. 그리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하다 보면 계란 하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어떻게 요리할 건지 요청할 수 있다. 햄버거를 먹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내용물을 다 고를 수 있다. 처음으로 마트에 가서 우유를 고르던 때가 생각난다. 하마터면 잘못 가져올 뻔했다. 우유하나도 옵션이 정말 다양하다. (옵션의 나라 미국)
세상의 다양함과 상대의 상황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은 참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상대와 나의 다른 점을 틀리다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 주는 문화.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면 한국도 좀 더 여류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 고정관념 없는 오픈형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사람은 이럴 거야 짐작하고 건네는 질문이 아닌, 당신의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로 타인을 마주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