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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Oct 27. 2022

나의 스승님이 이렇게 말했다

먹고 토하기를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설마 토한다고 암이 생기겠어? 큰 병이 생기겠어?'라고 쉽게 생각하고 먹는 귀신에 들린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식욕에 휩싸이면 토를 할 때까지 먹게 된다. 


먹는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입에 쑤셔 넣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먹고자 하는 욕망은 악마가 씌어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음식에 달려들게 한다. 

먹고 토한 경험이 계속 쌓이면 먹고자 하는 충동적인 마음이 들 때 '먹고 또 토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놓고 있던 의지의 끈을 놓기 쉬워지게 된다.


내가 항상 먹고 싶었던 욕망의 음식은 초콜릿. 초콜릿이 묻어있는 과자, 케이크, 빵이라면 전부 다 맛보고 싶었다. 

음식은 내 몸에 영양분을 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보다는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하나의 도구로 변했다.

 

평소에 맛보고 싶었던 초코 디저트를 한국, 캐나다, 중국 마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매하니 10만 원이 나왔다. 속으로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못했다. 

광란의 초코 파티가 시작됐다. 10만 원이 내 몸으로 다 들어가자 모욕적이고 죄책감이 온몸을 죄여 숨이 막혔다. 

나의 간은 알코올 해독하는 능력이 거의 없어 맥주 몇 모금에도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진다. 술이 몸에 받지 않아 맥주 한 캔을 급하게 원샷하면 몸에서 토해 낸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목구멍에 집어넣지 않고 쉽게 게워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게워내자 미친 듯이 한심했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거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5시간이 넘는 시간낭비를 하면서 몸을 괴롭히고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살바엔 살지 않는 게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뇌를 장악했다. 


게워내고 나면 속은 시원했지만 정신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이 새하얘졌고 심한 우울감 속에 갇혀 주위가 깜깜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다. 속이 심하게 미슥거렸다. 

심상치 않은 몸의 신호에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우웩 하며 위에 있는 무언가를 게워냈다. 위산과 초콜릿이 섞여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을 헹구려고 하는데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침을 뱉으니 핏덩어리가 침과 섞여 나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암은 아니겠지?' 생각부터 들었다. 


입에서 나온 피를 보자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옛 기억이 떠올랐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휩싸여 온 몸의 세포가 두려움에 떨었다.

 

5살 무렵, 냄비를 올려놓고 가스레인지 불이 켜 진채 온 가족이 잠이 들었다. 다행히 불은 안 났지만 탄 냄새와 연기를 심하게 마셔 숨이 막혀 기침을 심하게 했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할머니 집 가는 길에 지대가 높은 곳에서 차가 거꾸로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사고 후로 악몽을 수없이 꾸면서 죽음이라는 공포에 한동안 사로잡혀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봐 슬펐었다. 


이런 사고들로 어린 나이임에도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세상에 내가 없어진다는 공포는 어린 꼬마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스러웠던 기억은 점차 흐려졌지만 그때는 무서운 마음에 항상 엄마와 손을 꼭 잡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아까만 해도 이렇게 사느니 살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어디간데도 없이 입에서 나온 피를 보고 나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평생 음식과 싸우며 나 자신을 자책하느라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감사할 것들이 천지인데 음식 때문에 하루를 망쳐가며 우울하게 사는 것이 전부 어리석게 느껴졌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잘못된 다이어트 사고방식으로 몇 년 동안 시간낭비를 해온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고, 몸을 고통스럽게 괴롭힌 후 자책하고 비난하는 굴레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부탁했다. 


먹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에너지를 얻으며 모든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축복받은 행위다. 더 예뻐지겠다는 욕망으로 식욕을 참으며 무리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다가 식이장애를 겪을 수 있다.


나는 입 속에서 정체 모를 피를 본 후 큰 병이 걸린 것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폭식증의 괴로움과 비교가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폭식증으로부터 나온 짜증과 두려움이 종이에 손을 살짝 벤 따가움이라면 죽음을 인식하는 공포는 칼이 내 몸속 깊숙이 파고드는 듯한 차원이 다른 무서움이었다.

이 일이 일어난 후로 어제도 오늘도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자신이 세상에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궁금했다.

죽으면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 살았었던 내 삶이 사라져 잊히는 걸까? 지구에서 내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모든 기억들을 잃는 것인가? 


죽음이 존재하기에 인류는 진화할 수 있었고 후손들에게 지혜를 남기려고 온 힘을 바쳤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였다면 후손들에게 지혜를 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테고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매일 먹고 놀고 마시는 방탕한 생활에 빠졌을 것이다. 


어떠한 행동을 해도 죽지 않으니 중독과 쾌락의 길로 쉽게 빠져 역사 속의 위대한 발명은 일어나지 않아 과학기술의 발전은커녕 퇴화되어 멸망의 길로 빠졌을 것이다. 


죽음을 마주하며 질문으로 시작되는 철학, 인간의 근원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간의 한(恨), 애절함, 그리움, 저릿함, 상실감이란 감정들을 평생 못 느끼며 살 수도 있다.


무한한 삶이라면 현재 약 77억 인구의 사람들이 몇천 배로 인구수가 늘어 지구에 모든 인간들을 담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을 수가 있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77억의 몇천 배가 되는 영혼들을 담을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인가? 모든 죽은 역사적 인물들을 죽어서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죽은 영혼들이 다시 생명을 부여받아 새로 태어나는 대신 전생에 살았던 기억들은 모두 지워지고 다시 생명을 부여받는 환생이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전생에 누구였을까? 


인간은 언제 죽을지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죽음은 내일 당장 찾아올 수 있기에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며 온 마음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쓸데없는 비교, 과거에 대한 후회, 자책 다 집어치우고 집을 장만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아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는 것처럼 내게 주어진 오감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인생에 주어진 희로애락이라는 물감으로 나만의 그림을 그려보자라고 결심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내가 잊히고 지구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공포 때문이라면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지혜를 남기고 가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의 소명을 정해 매일 실천하고 글로 남긴다면 77억 명 중 한 명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며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랐지만 머릿속의 무질서들을 하나씩 집어 들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장이 서툴고 투박했다. 무질서하게 살아왔던 삶이 나만의 질서를 천천히 세웠다. 스스로 질의응답을 하며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8년 동안 나 자신을 괴롭혀왔었다. 온갖 방법을 다해 폭식증을 고치려고 애썼지만 저항하면 할수록 더 숨통을 죄였었다. 


죽음을 인식하자 비로소 남과 비교를 멈추게 되었다. 자기 비난을 멈추자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안개가 걷히고 나 자신을 향해서 걷는 길이 분명해졌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후회에 갇혀 살고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 순간이 흘러 그 순간이 과거가 되어 후회를 하는 것도 그만하기로 했다.


인생의 최고의 스승님 죽음이 내게 말한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늘 배움을 추구하세요. 때로는 마라톤을 뛰면서 부상을 당할 수 있고 숨이 차서 멈춰 서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옆에 함께 뛰는 사람들은 경쟁자가 아닌 마라톤을 함께 완주해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인생친구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응원하고 물을 나눠 마시는 사람이 되세요. 

긴 여정에서 당신은 한계를 극복해 자신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비로소 결승점에 왔을 때 자신으로 완성되는 꿈을 이루며 세상과 작별인사를 미련 없이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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