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주Ivy Oct 27. 2022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

그녀는 잘 있을까 잠들지는 않았을까 초조한 심정으로 그녀에게 가는 길이었다. 

딩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녀가 있는 병동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그 병동은 palliative care (말기 환자 간병동).

 

"You look tired today, did you get enough sleep?" 

(피곤해 보이시네요, 잠 잘 못 주무셨나요?)


"No sweet heart, I feel weak. I miss my daughter. If you don't mind, can you call my daughter? I am not feeling well."

(힘이 없구나, 딸이 보고 싶다, 혹시 괜찮으면, 딸에게 전화 좀 해줄 수 있겠어? 몸이 안 좋아.)


평소와 다른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되어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 노인이 부르는 번호를 입력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갈수록 노인은 금방 울 것 같은 모습으로 초조하게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은 일하느라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쓸쓸함이 얼굴에 가득한 노인이 괜찮다며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입맛이 까다로운 환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해 메뉴를 선택하는 일이 나의 업무 중 하나였다. 노인의 메뉴를 작성하려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I would like to do menu selection for Weekend Lunch and Dinner."

(주말 메뉴를 함께 작성하실 거예요.)


"Sweet heart, don't tell anyone but I decided I won't eat anymore because It's time to go. But I don't want you to get in trouble so you can send meals anyway but I won't touch them."

(이제 갈 시간이라서 나는 먹지 않을 테야, 난 너를 곤란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그러니 밥을 제공해도 된단다. 어쨌든 손대지 않을 테니.)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노인은 90살이 넘었지만 정신이 아주 날카로웠고 유머도 가지셨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얼굴에 걱정을 한가득했고 예쁜 눈은 꼬리를 내려 슬펐다. 

걱정이 된 나는 '그래도 드시고 힘내셔야죠 그래야 딸과 데이트도 하고 가족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행운을 빌게요 힘내세요' 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애를 썼다.

슬픔에 잠겨있던 그녀의 눈이 내게로 응시하며 입게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젊은 시절 나는 딸에게 못되게 굴어서 벌을 받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 전화도 안 받는 거고 다 내 탓이야. 딸이 전화를 안 받는 건 당연해.


나는 자식을 위한다는 말을 내세워 딸을 엄격하게 가르치고 훈육을 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숨 쉴 틈을 주지 않았지. 

그때는 다 자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옳다고 생각했어. 딸을 무척 사랑했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안 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된단다. 사랑한다고 자주 하면 딸이 강하게 못 클 거라고 생각했었어 잘못된 생각이었지.

밤마다 꼭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못해줬는지. 밤마다 공부하라고 말하는 대신 같이 나가서 별 보고 달 보면서 대화하는 것을 그때는 하지 못했을까. 

 

Sweet heart, 인생은 짧으니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해라.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남는단다. 너무 많은 고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네가 사랑한다면 하거라 실패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거라 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오늘 어제 뭐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할 때도 있었고 살아온 얘기를 나누며 나도 모르게 그녀와 정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Elizabeth. 야윈 얼굴에 큰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젊었을 때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냘픈 목소리지만 울림을 주는 한마디가 과거에 갇혀 괴로워하던 나를 손을 잡고 현재로 이끌어주셨다. 그녀를 오래 보고 싶었다. 


"Elizabeth, 당신은 제게 힘을 줬어요 타지에서 사는 것이 행복한 일보다는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많아요.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식이 장애를 갖고 있어요. 건강하게 먹자고 수없이 다짐해도 어떤 날은 무너져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나


"초콜릿 한 두 개 먹는 것이 너를 기쁘게 한다면 해도 괜찮아,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이 더 안 좋아 너도 잘 알잖니, 나도 생각 없이 눈에 보이면 입에 넣는 안 좋은 습관을 가졌었단다. 살도 쪘었고 자신감도 하락했었지. 그냥 먹는 게 습관이었어. 

어느 날 동생이 내게 'Elizabeth 이왕 먹을 거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먹어 그럼 많이 먹지 않아도 금방 만족될 거야. 좋아하는 것을 먹고 만족하는 연습을 해봐.' 

그 후로 나는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연습을 했단다. 도가 지나치게 먹을 필요가 없지, 내일 또 먹으면 되니까." - 엘리자베스 


"If you recieve a punishment where you have to live that day repetitively, how would you spend the time?

(오늘 하루가 앞으로 당신이 죽기 전까지 매일 반복되어 살아야 한다는 벌을 받아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래?) - 엘리자베스


마지막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녀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시 만날 것처럼 이별했다.


오늘 하루가 내일도 반복되고 매일 반복된다면 내게 기쁨을 주는 것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행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많이 나누고 해보지 못했던 것들도 경험하며 1분 1초를 온전히 그 시간에 몰입하며 충만한 기쁨을 느끼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그녀는 내가 한국에 있어야 할지 캐나다에 지내야 할지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대신 즐거움을 주는 일을 매일 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괜찮다고, 장소보다는 내게 의미를 주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먹는 것과 전쟁을 하는 내게 혼자 먹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대화하는 식사자리를 만들어서 같이 기쁨을 나누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는 다이어트, 예뻐지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압박, 돈이 무의미해짐을 그녀에게 배웠다. 

정신이 날카로웠지만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며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혼란스러워 앞이 캄캄했던 내게 빛 한줄기를 선물해주셨다.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이 아닌,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흘러 보내는 삶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나 자신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Good bye, Elizabeth." 

이전 09화 나의 스승님이 이렇게 말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