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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Oct 26. 2022

태국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탱탱볼과 축구공, 당신의 선택은?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더 넓은 곳으로 가서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나는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바다를 건너는 바다 개구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항상 내재되어있었다.

폭식과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바다 개구리가 되고자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항상 했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을 때도 해외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태국 무역회사 인턴으로 방콕에 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가수 닉쿤이 태국에서 왔다는 것과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게 전부였던 방콕은 낯설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에 간다는 생각에 설렘과 호기심이 더 컸다. 방콕에서의 8개월은 행복했다.

언어의 장벽이 있어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들은 항상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서툰 발음이었지만 '안녕하세요'를 내게 건네는 친절을 보였다.

상냥한 그들에게 나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리며 태국 문화에 스며들었고 짧은 태국어로 안부와 인사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태국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는지 금세 정을 붙였다.


내가 인턴 했던 회사는 중소벤처기업 진흥공단에서 선정된 기업들과 태국 회사와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했다.

태국에서 한국 중소기업 관련 박람회를 개최해 태국 기업 대표님들이 박람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인턴 회사에 근무하면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태국 음식을 맛보았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덕분에 태국 현지인 생활에 더 가까운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 대표님은 50대 나이에 키가 크셨고 두 아이의 가장인 아버지셨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대표님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과묵하시고 무뚝뚝하셨지만 대학생인 내가 사회경험을 해보겠다고 멀리까지 와 있는 게 기특함 반 안쓰러움 반이셨는지 자신의 젊었을 때의 시절을 내게 말씀해주시며 친해지려고 애쓰시는 게 보였다.

대표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대표님 한마디 한마디에 큰 리액션과 질문으로 보답했다.

대표님은 태국 기업에 가실 때면 감사하게 나를 항상 데리고 가 주셨다. 덕분에 현지에 있는 기업도 직접 방문해 보고 기업 사장님들도 만나 얘기도 나눴다.


대표님은 혼자인 시간이 많은 내가 걱정되신다며 Paul을 소개해줬다. 나보다 태국에 1년 정도 먼저 온 Paul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 영어를 원어민처럼 했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회사생활을 하는 Paul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중에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해 준 사람이자 태국의 삶을 더 뜨겁게 보낼 수 있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퇴근 후에는 할 게 없어서 무작정 택시를 타고 방콕 시내로 나갔다.

태국에서 한국에 가면 취업 준비로 바빠질 것이란 생각에 태국을 온전히 즐기고 놀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돈이 생길 때마다 이곳저곳 방콕 구석구석을 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여행자들의 성지인 카오산 로드의 매력에 빠져 주말에는 게스트 하우스를 잡아 여행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인턴을 하면서 맺어진 한국인 친구들과 현지인 맛집에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고 핫한 클럽에서 뻣뻣한 몸을 흔들기도 했다.

이방인인 나와 Paul은 태국 휴일만 되면 할 일이 없어 방콕 남부 지역으로 차를 끌고 Road trip 도 갔다 오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마음 놓고 놀았던 적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탱탱볼 같은 삶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튕겨 다니며 모험했고 문화를 느꼈고 맛을 음미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 위험했던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잘 피해 다녔다. 불이 타오르는 것 같은 방콕의 노을에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고 어둠이 찾아오면 분위기 좋은 바에 들어가 못 마시는 술도 마셨다.

달랑 돈 5만 원을 들고 다른 도시에 놀러 가서 모험을 했고 그 지역 음식을 먹으며 현지인의 삶에 녹아들었다. 체감 온도 40도가 넘는 숨 막히는 더위도 시간이 흐르자 당연해졌고 자연스러워졌다. 돌아다니다가 피로감이 몰려올 때면 태국 마사지를 받으며 내게 쉼을 주는 여유도 가졌다.


태국의 삶은 잠시 머무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았기에 매일을 심각하게 살지 않았고 화가   있는 상황에서도 웃기를 택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갔다.

방콕 역마다 내려서 골목길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모든 것을 눈과 사진으로 담았다. 돌아다니다가 목이 마르면 신선한 망고 주스나 수박주스를 마셨고 배가 고프면 팟타이를 먹었다. 칼로리 따위는 계산하지 않았고 몸의 신호를 온전히 느끼고 응답했다.


유일하게 태국에서는 폭식증 증상이 거의 없었다. 길가 포장마차에서 천 원 정도 하는 새우볶음밥에 행복했고 비 오는 날에 먹는 똠양꿍에 감사했다.

태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무수하게 많았지만 음식에 집착하지 않았던 이유가 매일 모험하면서 마주치는 새로운 경험들이 재밌었기 때문이 아닐까?

8개월 후 떠날 몸이어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일절 사지 않았기에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방콕에서 매일을 여행하는 것처럼  재밌게 사는 게 문득 그리웠다.

수중에 많은 돈이 없어도 미소를 짓고 주위 사람들과 행복했던 삶의 패턴을 다시 찾고 싶었다.


토론토에서는 방콕의 삶처럼 살지 못하는가

 

방콕의 삶이 탱탱볼 같았다면 토론토는 앞에 닥치는 일들을 뚫고 생존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짓눌렀기에 한 골이 중요한 축구공 같은 삶이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탱탱볼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만을 생각하기보다는 골문 앞까지 가는 모든 패스를 신중하게 해야 했다. 즉 미래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이 무엇일까 이것저것 재고 따졌다.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의 설레는 여행자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금은 일에 치이고 돈에 치여 급급한 삶을 영혼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내 몸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한 여름밤들의 꿈같았던 방콕이 그립다고 토로했다.

그리워만 하지 말고 토론토에 처음 왔을 때 설레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봤고 새로운 상황으로 설정했다.


'나는 토론토에 긴 여행을 온 여행자다. 현재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요리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매일 가는 길을 선택하는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 일터로 갔다. 새로운 꽃과 나무들이 나를 반겨줬고 낯선 분위기가 주는 설렘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길을 가다가 아기자기한 카페, 유럽풍이 나는 빵집을 발견했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거침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쉬는 날은 트레일(Trail)로 가서 호수와 얘기를 나눴고 꽃, 나무들과 뛰어놀았다. 매번 새로운 트레일을 탐험하다가 멋진 경관이 나오기라도 하면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좋아했고 감탄했다.


무작정 걷다가 길을 잃을 때도 있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걷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 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자연의 소리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걸었다. 꿈속에서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느라 무서운 줄도 몰랐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출발했던 시작점에 도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내 발이 스스로 길을 찾았던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 때 오로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한발 두발 내디뎠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잊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낯선 곳에 몸을 내 던지며 그토록 찾고자 한 것이 현재를 온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낯선 곳의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다가 넘어져 피가 나기도 하겠지만 나만의 세렌디피티를 위해 연고를 바르고 반찬고를 붙인 후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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