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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Aug 17. 2022

우리가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

8년이 걸렸던 다이어트의 진실

머리가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은 금세 폭발할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손과 발이 떨렸다. 다양한 인종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Sorry, I am not feeling well. Can I please do next tiem?"

" 몸이 안 좋아서요, 죄송하지만 다음 시간에 해도 될까요?"


개인 프레젠테이션 발표시간이었다. 수십 명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전날 밤을 새우며 대본을 외웠고 무한 연습했다. 영어로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한국인이 아닌 수십 명의 다양한 인종 앞에서 말하는 것이 낯설었는지 연습한 것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로 자신감이 하락했다. 영양학과에서 한국사람은 나 혼자였고 말을 점점 잃어갔다. 반에서 가장 조용한 학생이 되었다. 


꾹 닫은 입대 신 귀가 예민해졌다. 폭식증 고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컬리지 입학했는데 고치는 것은커녕 다른 문제들이 매일 발생했다. 

수업마다 쏟아지는 개인, 그룹과제와 쪽지 시험에 일상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주중은 괜찮았지만 문제는 주말. 

문제 1. 주중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주말에 풀렸다. 

문제 2. 주말이 되면 수많은 과제, 학교생활에 이리저리 치인 마음이 보상을 원했다. 

주중에는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주말에 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참았다. 참다 보니 주말에 식욕이 폭발했다. 


매일 닥치는 새로운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고 영어가 서툴러 마음의 응어리를 표출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표출할 탈출구가 필요했다. 디저트가 유일한 행복이었다. 


디저트가 얼마든 상관없었다. 내 입과 정신을 만족시켜주는 디저트는 구매해서 먹었다. 이 당시 나의 입은 먹을 때만 열렸다. 줄어가는 통장잔고는 안중에 없었다. 


입 꾹 다물고 있는 내가 미웠고 컬리지 가서 공부하면 음식 생각이 덜할 줄 알았지만 디저트 집착은 더 심해졌다.

 

점심시간, 브라우니를 계산하려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느낌이 싸해 통장 잔고를 확인하니 0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심했다. 

'디저트 때문에 니 인생 다 망칠래? 정신 좀 차려 평생 이렇게 살 거야?'

급한 대로 남자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 조치가 필요했다. 

일을 최대한 해야 했고 지출은 줄여야 했다. 무엇보다도 졸업하기 위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했다.


수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예습을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친구들에게 할 말들을 미리 준비했다.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건네주며 다가가기로 했다. 


한국 중학교 수준과 비슷했던 수학 시간은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수업이었다. 수학 문제들과 끙끙거리던 한 여학생이 내게 도움을 청했다. 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외친 후 성심성의를 다해 알려줬다. 

중, 고등학생 때 수학 문제들을 배우면서 과연 나중에 사용할 일이 있을까 했었는데 토론토에서 빛을 발할지 상상도 못 했다. 


수학 시간이 맺어준 앨리샤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앨리샤 덕분에 5명의 친구가 생겼다. 

그들은 나를 무리에 끼워줬고 밥을 먹으러 갈 때든, 그룹과제 조를 만들 때 항상 끼워줬다. '홀로 외로운 학교 생활을 하겠구나' 무기력했던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피부색, 백그라운드, 몸 크기도 달랐다. 그들은 항상 당당히 행동하며 자신감에 차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가져와서 같이 먹었다.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했다. 

단체 활동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신선했고 매력을 느꼈다. 

어떤 주제로 몇 시간 동안 얘기를 했다. 그들은 조용한 내게 많은 질문을 했지만 6명 앞에서도 수줍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에게 조금씩 말문이 트였다.  


바디 이미지에(Body Image)에 대해서 그룹과제를 해야 했다.


마른 몸매지만 볼륨감을 강조하는 바디 이미지에 무의식적으로 주입당하면서 자랐다.

사람마다 활동량과 기초대사량에 따라 몸이 요구하는 음식량이 다르다. 많은 이들이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하루에 500kcal만 먹거나 굶어서 마른 몸을 유지하려고 매일 싸운다. 유명한 사람이 했던 다이어트 법이 TV에 소개라도 되면 너도 나도 따라 하며 유행처럼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유행에 뒤처지면 '이걸 몰라?'라는 사회적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이 매력 있고 재밌지만 때로는 지치거나 소외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바디 이미지 (Body image) 그룹과제 첫 질문부터 막혔다.

당신의 몸과 외모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살을 더 빼야 한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군살이 하나도 없는 몸이 되고 싶었다. 

겪고 있는 폭식증으로 매일 죄책감에 살고 있어서 모든 음식들이 살찌게 만드는 것 같아 두려웠다. 반항아 심보처럼 먹는 것이 무서운만큼 식탐도 커졌다. 

한 번 터지면 통제할 수 없이 먹어치웠다. 항상 음식에 지는 나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원하는 내 이미지가 거울에 비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옛날 같지 않은 외모를 보면 화가 나 거울을 안 보고 지낸 지 세 달이 다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라며 속으로 부정했다. 

경미했던 폭식장애는 나를 부정하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심해졌다.


그룹 친구들은 피부색, 몸의 굴곡, 크기, 생김새가 다르고 각자의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대답이 부러웠고 무엇이 그들을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친구 1 : 나는 내 몸이 좋아! 날씬하지는 않지만 굴곡 있는 몸이 나를 섹시하게 만들어.

친구 2 : 허벅지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른 부위는 마음에 들어서 괜찮아! 매일 운동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나는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가진 섭식장애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폭식장애 혹은 과식증:

폭식을 하지만 구토나 격렬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폭식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 체중이 불어나 점점 더 부정적인 바디 이미지를 갖게 된다. 


-폭식증:

폭식장애에서 발전해 많은 음식을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먹는 것이 특징 

대체로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폭식을 하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하다. 폭식 후에는 폭식한 사실을 부정하고, 체중 증가가 두려워 구토를 하거나 금식 또는 격렬한 운동을 하기도 한다. 폭식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체형과 체중을 혐오하며, 섭식장애로 인해서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자기 몸에 대한 혐오와 그에 따르는 죄책감, 우울증과 자기혐오가 삶의 질을 낮추고 식습관에 대한 자기 통제럭은 계속해서 약해진다. 젊은 여성의 약 3퍼센트가 이 장애를 겪고 있다.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00) (Body image by Thomas F. Cash)


다이어트로 인해 폭식증이 생기는 원리

- 자신이 정해 놓은 다이어트 식단만 먹으며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무시한다. 

- 최소량의 칼로리만 섭취한다. 

- 충분한 칼로리가 들어오지 않으니 뇌는 생존에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한다.

- 몸에게 음식을 섭취하라고 명령한다.

- 어느 날 식욕이 폭발해 과식을 넘어 폭식을 한다.

- 자책, 비난, 후회하며 부정적 감정에 빠진다. 

- 다시 극한의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 다이어트의 굴레에 빠진다.


초콜릿 몇 개면 채워질 만족감을 '초콜릿 먹으면 살찌니까 안돼'라고 참다가 밤에 무심코 먹었던 단백질 초코바로 시작해 집에 있던 모든 과자들을 먹은 적이 수없이 많다. 

불만족스러우면 더 많은 양을 먹게 되고 포만감과 상관없이 다른 것을 계속 먹으려고 한다. 


장을 보던 중 초콜릿 쿠키를 먹고 싶을 때는 감정을 무시하고 '안돼' 하며 초코맛이 나는 칼로리가 낮은 디저트를 사 오지만 내가 먹고 싶은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먹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마트에 가서 초콜릿 쿠키뿐만 아니라 구매계획에 없었던 다른 디저트들도 사 와서 먹어치우게 된다.


원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부인함으로써 생겨난 공허감을 채우려고 칼로리가 낮은 디저트를 대신 먹지만 스스로 금지한 음식을 먹고 싶은 갈망은 강렬해진다. 결국은 먹고 싶었던 음식을 폭식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파티, 여행, 결혼식, 행사, 휴가, 잔치, 기념일의 공통점은 소중한 순간을 기념하는 맛있는 음식들이 함께한다. 음식이 없는 여행은 벌써 재미가 없다.


다이어트 식단을 지켜야 해서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거나 다가오는 남자 친구와의 1주년 기념일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두려워 일주일 전부터 소량만 먹는 등 다이어트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소중한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된다. 


체중이 증가하면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한다는 따가운 사회적 시선들, 

마른 몸이 이상적인 몸이라고 암묵적으로 말하는 각종 매체들, 

다이어트 식품을 팔기 위해 다이어트를 장려하는 광고와 마케팅들이 삶에 침투해 자존감과 일상을 무너뜨리는 식이장애를 만들 수도 있다. 


다이어트가 폭식증을 생기게 하는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어도 무리한 다이어트로 몸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제 다이어트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루투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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